K씨는 최근 지인에게 미국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틴이 운용하는 ‘AB미국그로스펀드’를 추천받았다.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미국 주식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AB미국그로스펀드는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유나이티드헬스그룹 비자 등 미국 내 초우량주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다. 북미 지역에 투자하는 국내 주식형 펀드 중 순자산 규모가 1위다. 지난해 순자산이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1년 수익률은 36.95%였다.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신한은행을 찾았지만 “신규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한은행 고객이 이 상품에 투자한 금액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2019년 대규모 손실로 물의를 빚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문이다. 이 사태에 대한 후속조치로 은행연합회는 지난해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의결했다. 은행에서 펀드나 신탁, 변액보험 등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비예금상품’을 판매할 때 내부통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모범규준에는 개별 펀드의 가입 한도를 설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파생상품이 아닌 평범한 주식형 펀드도 이 한도를 넘어서면 고객이 원해도 신규 가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AB미국그로스펀드 외에 삼성전자와 채권에만 투자해 수익을 내는 ‘삼성전자알파펀드’와 ‘유리글로벌거래소펀드’ 등이 너무 잘 팔렸다는 이유로 신한은행에서 신규 가입이 중단됐다. 고객은 상품 선택권이 줄어들었고, 운용사도 간판 펀드를 키우기 어렵게 됐다.

판매 규제가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은행과 증권사 할 것 없이 상품 판매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설명의무 위반 등에 대한 손해배상 입증 책임이 금융회사로 옮겨오면서 계좌 개설에 30분, 계좌 개설 후 상품을 가입하는 데 30분씩 걸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파생상품이 아닌 주식형 공모펀드도 너무 잘 팔렸다는 이유로 신규 가입이 중단되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운용사 차원에서도 애로가 클 것”이라며 “그렇다고 판매사의 ‘리스크 관리’가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