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청계천이었다. 1980년 7월, 물리학자인 이용태 박사가 자본금 1000만원으로 청계천변 세운상가에 삼보컴퓨터를 설립했다. 직원은 7명이었다. 그는 창업 6개월 뒤인 1981년 1월 국산 개인용 컴퓨터(PC) 1호 ‘SE-8001’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 PC인 미국의 ‘알테어 8800’이 1974년에 나온 것을 감안할 때, 한국 기술 수준으로는 놀라운 일이었다.

TV수상기를 모니터 대용으로 장착한 이 컴퓨터는 그해 11월 캐나다에 수출까지 했다. 1982년에는 두 번째 컴퓨터 ‘트라이젬 20’으로 가정 상용화 시대를 열었다. 애플2 컴퓨터 호환기종인 이 제품은 당시 가격이 42만9000원으로 비쌌지만 1년여 만에 6000대나 팔렸다.

1985년에 IBM 호환기종인 ‘트라이젬 286’까지 선보이며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을 이끈 삼보는 1993년 삼성이 486급으로 시장 판도를 바꿀 때까지 국내 1위를 고수했다. 컴퓨터 종주국인 미국에까지 파고들어 매출 규모가 1997년 1조원, 2000년 4조원을 넘었다.

회사명 삼보(三寶)는 인재·기술·서비스의 세 가지 보물을 뜻한다. 이용태 창업자는 이 ‘3대 보물’로 대한민국 IT 역사를 개척한 벤처 1세대다. 경북 영덕에서 농업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그는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때 전산학을 함께 공부했다.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과 전자기술연구소(KIET) 부소장을 거치면서 “100개 벤처, 1만 개 중소기업 육성”을 외쳤다.

그가 국내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업체 두루넷과 나래이동통신 등 30개 계열사를 거느렸던 것도 인재·기술·서비스 덕분이었다. 한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지금은 차남인 이홍선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있지만, 그의 ‘삼보 정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도 유효한 미래 기업의 핵심 요소다.

이제는 모두가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다. 추억 속의 PC는 노트북과 태블릿PC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다. 주요 PC 제조사들의 노트북 매출 비중이 90%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지금의 고성능 휴대기기들이 초기 PC 개발 주역들의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랐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앞서간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던 뉴턴의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