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1일 한국은행을 겨냥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역할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시중은행에 대해선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다. 여당의 이런 행보를 두고 한은의 독립성과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낮춰라"…대놓고 금융시장 개입하는 與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금융 토론회에 참석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데엔 정부 못지않게 금융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은이 지난해 저신용등급 회사채·기업어음 매입기구(SPV)에 8조원 정도를 출자하기로 했는데 5분의 1밖에 이행하지 않은 것을 얼마 전 확인했다”며 “금융을 이끌고 뒷받침하는 한은의 역할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SPV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장 내 소화가 어려워진 BBB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사들여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작년 4월 설립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SPV는 회사채 발행 기업들의 대출 요청이 있어야 자금을 지원하는 ‘캐피털 콜’ 방식으로 운영된다”며 “한은의 대출액이 많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회사채 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 원내대표가 근거로 제시한 한은의 SPV 지원액 규모도 사실과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SPV에 대한 누적 지원액은 전체 한도(8조원)의 44%가 넘는 3조5600억원에 달한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1년에 수십조원을 버는 은행들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해 금리를 1%포인트 정도는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술 더 떴다. 노 의원은 “한은의 기준금리가 연 0.5% 수준인데 은행 대출금리는 연 3~4%에 이른다”며 “관치금융이 아니라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윤후덕 민주당 의원은 4·7 재·보선에서 여당이 패배한 책임을 은행권에 돌리는 발언도 했다. 윤 의원은 “선거 이후 조기축구회에 나가 보니 ‘은행 창구에서 정부 방침 때문에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말이 나왔다”며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정부와 민주당을 비난하고 심판한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민심을 잃어 선거에서 진 민주당이 이제 와서 패배 책임을 한은과 은행들 탓으로 돌리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도 “관치금융을 넘어 ‘정치금융’의 수위가 도를 넘은 것 같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은행의 고위 임원은 노 의원 발언에 대해 “대출금리를 1% 낮추라는 건 시장 리스크와 신용리스크를 반영해 책정되는 시장금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은행들이 코로나로 고통을 겪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조치를 취한 가운데, 손해를 감수하고 지원을 늘리라는 것은 정부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춘다면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부실이 시작될 것”이라며 “정치인의 책무는 시장 메커니즘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지 금리를 인위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오형주/김익환/빈난새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