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질병관리청이 접종 대상자를 정해 지자체에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대상을 선정하도록 바꾸겠다는 의미다. 일선 현장에서는 지자체별로 접종 속도가 다른데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오찬에서 “현재는 질병청이 (접종 대상) 명단을 정해서 지자체에 통보하는 방식이라 (접종에) 속도가 잘 안 나고 있다”며 “지자체가 자율성을 갖고 선정하면 방역당국이 (백신) 물량을 공급하는 쪽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현재는 질병청이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정해 지자체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문 대통령 말대로 접종 시스템이 바뀌면 각 지자체는 접종 순위를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방역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지자체별 기준이 제각각인데 혼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방역당국은 지난 1일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했는데, 백신 부족 탓에 지자체별로 속도가 제각각이다. 서울 서초구는 ‘고령자 우선’ 원칙을 세워 86세 이상은 5월 초, 76세 이상은 6월 중순에 접종하기로 했다. 대구 수성구는 어린 사람부터 접종하기로 했다. 같은 나이인데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접종 일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자체가 접종 대상을 자체적으로 정하게 되면 현장의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접종 우선순위는 과학적 기준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데, 지자체별로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접종 대상이 정해지면 접종 속도가 오히려 더 늦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접종 시스템 변경 발언은 방역 실무진과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접종 대상’인지, ‘백신 종류’인지 분명치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방역대책본부 관계자는 “실무진도 문 대통령의 발언을 언론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며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방역 사령탑’이 불분명해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임명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과 질병관리청 사이에서 벌써부터 엇박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질병청이 ‘청와대 코드인사’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비정상적 결정”이라며 “접종 및 백신과 관련된 정책은 질병청에 전권을 주고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정부에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 코로나19 백신 도입을 건의하기로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백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어야 하며, 스푸트니크V 백신을 포함한 다양한 백신 검증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V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과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이다. 유럽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선아/강영연/수원=윤상연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