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의 대표적인 항일무장독립운동가 오석(烏石) 김혁(金赫.1875~1939) 장군의 제82주기 추도식이 22일 용인시 기흥구 김혁공원에서 열렸다.

추도식에는 김혁 장군의 유족, 경기동부보훈지청, 3·30기흥만세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해 김혁 장군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다.

김장훈 경기동부보훈지청장은 추도사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김혁 장군님의 거룩한 희생과 헌신에 깊은 존경과 추모의 뜻을 바치며,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용인시 기흥읍 농서리에서 태어난 김혁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 1900년 육군 참위로 임관해 정위(현 대위급)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1907년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항일운동을 결심, 용인에서 3·1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1920년 청산리대첩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1925년 북만주지역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신민부가 결성되자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무장 투쟁을 전개한 뒤 1928년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중병으로 가출옥돼 1939년 64세를 일기로 숨졌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02년 4월에는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묘는 원래 고향인 용인 농서리에 있었으나 1974년 동작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됐다.

경주김씨 종친회가 1985년 용인시 기흥구 구갈리에 오석 김혁 장군 독립운동기념비를 건립했고, 용인문화원이 2016년부터 김혁 장군의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오석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