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가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낮추는 대신 부유층 세율을 대폭 높이는 실험에 나섰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발생 후 타격이 컸던 중산층을 지원하면서도 재정 적자는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뉴욕, 중산층 세금 깎고 부유층은 확 높인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최근 서명한 2022회계연도(올해 7월~내년 6월) 주(州) 예산안에 따르면 뉴욕 내 중산층 480만여 명에 대한 세금 22억달러(약 2조4600억원)가 감면된다. ‘중산층 소득세 감면 법안’ 덕분이다. 이 법안은 2016년 제정된 뒤 주지사 서명을 통해 1년 더 생명을 이어가게 됐다.

부부 합산 연소득이 4만3000~16만1550달러인 납세자의 소득세율은 종전 6.09%에서 5.97%로, 16만1550~32만3200달러 소득자는 6.41%에서 6.33%로 낮아졌다. 개인 연소득이 2만1400~8만650달러이면 5.97%, 8만650~21만5400달러이면 6.33%의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쿠오모 주지사는 “중산층 세율 감면을 더 확대해 최대 20%까지 낮추는 게 목표”라며 “뉴욕주에서 7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중산층 세율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뉴욕주는 연소득 25만달러 미만 가구에 대한 재산세 부담도 낮추기로 했다. 세액공제 프로그램 확대를 통해서다. 주택 소유주들의 재산세 부담이 총소득의 6%를 초과하면 최소 250달러에서 최대 350달러까지 세금을 깎아준다. 110만여 가구가 평균 340달러씩 혜택을 볼 것이란 게 뉴욕주의 설명이다. 총 3억8200만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부유층에 대해선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율을 큰 폭으로 인상했다. 2021회계연도 재정 적자만 15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돼서다.

쿠오모 주지사가 서명한 ‘부자 증세 법안’은 연소득 100만달러(부부 합산 200만달러) 이상의 부자들이 부담하는 소득세율을 최고 10.9%로 높이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 100만~500만달러 소득자 세율은 종전 8.82%에서 9.65%로 올라갔다. 500만~2500만달러 소득자에겐 이보다 높은 10.3%, 2500만달러 이상 초고소득자에겐 10.9%를 적용한다. 2027년까지 한시 시행하는 조건이다. 뉴욕 주민에게 별도로 부과하는 3.88%의 소득세를 더하면 뉴욕 부자들은 최고 14.8%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소득 규모에 따라 10~37%에 달하는 연방 소득세와는 별개다. 뉴욕 내 초고소득자들은 매년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뉴욕은 캘리포니아(최고 13.3%)를 제치고 미국 50개 주 가운데 소득세율이 가장 높은 곳이 됐다. 뉴욕주는 현행 6.5%인 주(州) 법인세율도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7.25%로 높이기로 했다. 이런 증세 정책을 통해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은 43억달러에 이른다.

현지에선 뉴욕주의 세법 실험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중산층에 대한 세금 감면보다 훨씬 많은 증세가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세무 전문가인 앤드루 실버맨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쿠오모 주지사가 세율을 높여도 부유층이 떠나지 않을 것이란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며 “부자들이야말로 일하는 장소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재산이 10억달러를 넘는 억만장자 90여 명이 뉴욕주에 살고 있다. 뉴욕시만 놓고 보면 상위 1% 부자들이 납부한 소득세가 전체의 42.5%를 차지했다. 이 중 소수만 빠져나가도 뉴욕주 재정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