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그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 북한 도발에 관한 답변은 듣는 국민의 귀를 의심케 했다.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남측 감시초소(GP) 총격과 서해 해안포 사격에 대해 “굉장히 절제된 도발을 했다”며 “사소한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떼떼(말더듬이)’ ‘미국산 앵무새’ 등 막말을 퍼부은 데 대해선 “협상을 재개하자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두둔했다. 북한을 강력 비판해도 모자랄 판에 대한민국 장관이 할 소리인지 개탄스럽다.

북한의 작년 5월 강원도 최전방 GP 도발은 명백하게 의도된 것이었다. 북한군은 고사총 4발을 남측 GP 외벽에 명중시켰다. 자칫 우리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중한 사태였다. 2019년 11월 서해 창린도 해안포 사격은 김정은이 직접 지휘했다. ‘적대행위 전면 중단’을 담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핵심을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 장관은 ‘굉장히 절제’, ‘사소한 위반’ 운운했으니 어느 나라 각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도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9·19 합의 정신을 잇따라 훼손했음에도 남측 주요 인사들이 북한을 감싸는 데 급급해한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한·미는 냉전동맹’이라는 운동권식 주장을 폈고,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대포로 안 쏜 게 어디냐”고까지 했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있는 건지 의심이 든다. 김정은이 “완전무결한 핵 방패를 구축했다”고 해도 문 대통령과 정 장관은 “평화·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감쌌고, 일부 여당 의원들은 한·미 훈련 중단을 주장했다. 그러니 북한이 더 오만방자한 것 아닌가.

확연히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아랑곳 않는 것도 걱정이다. 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재자론’을 되풀이하며 이미 실패한 ‘싱가포르 합의’ 등 트럼프 행정부식 대북 접근법을 바이든 행정부에 주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외교정책 뒤집기’에 나섰고, 비핵화 조건에서만 북한과 외교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내비치고 있는데도 엉뚱한 요청을 한 꼴이다. 대(對)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미국에 중국과의 협력을 주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외교 갈라파고스’를 자초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