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쿠팡, 쇼핑천국 향한 '경쟁의 지옥문' 열다
“우리가 e커머스(전자상거래) 1등이다.”

네이버가 최근 해외 투자자를 상대로 기업설명회(IR)를 하면서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각종 리스크 때문에 ‘1등 발언’을 자제해왔던 네이버의 기업 문화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쿠팡의 도발이 네이버의 공격 본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쿠팡은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쇼핑 검색의 탈(脫)포털화를 지향하고 있다. ‘검색-쇼핑-결제’로 이어지는 네이버의 사업 모델을 근간부터 파고들고 있다. 국내 e커머스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네이버와 쿠팡의 대결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갈수록 격화되는 ‘네·쿠’ 경쟁

이해진 네이버 GIO / 김범석 쿠팡 의장
이해진 네이버 GIO / 김범석 쿠팡 의장
네이버와 쿠팡의 대립은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CJ, 신세계그룹 등 주요 기업들과 지분교환 방식으로 물류·콘텐츠 ‘혈맹’을 맺었다. 쿠팡에 비해 취약한 물류시스템 보완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쿠팡 내부에선 “창업한 지 10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을 대기업집단이 집단 공격하겠다는 것인데 예전 같았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조사를 해야 할 일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네이버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범석 쿠팡 의장의 동일인(그룹 총수) 지정 여부를 놓고도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공정위는 당초 쿠팡을 이달 말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총수 없는 기업으로 분류할 예정이었다. 김 의장의 국적이 미국인 점 등을 고려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네이버와의 형평성을 들어 총수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계열사 43곳(작년 말 기준)을 보유하고 있는 네이버는 2017년 공정위로부터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당시 공정위는 이해진 창업자가 최대주주가 아님에도 그를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로 지목하며 ‘총수’로 지정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쿠팡 건과 관련해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네이버와의 형평성”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이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공정위가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법을 두고도 두 회사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쿠팡 내부에선 네이버가 자신에게로 날아오던 공정위의 화살을 플랫폼 업계 전반의 문제로 돌렸다는 인식이 강하다. 온라인플랫폼법은 이베이코리아가 네이버의 가격 비교 서비스를 고발한 게 발단이 됐다. 검색 독점력을 남용해 네이버가 자사 쇼핑몰인 스마트스토어에 유리하게 검색 결과를 조작했다는 게 고발의 요지다.

‘상생’ 네이버 vs ‘소비자 편익’ 쿠팡

네이버와 쿠팡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160조원 규모의 국내 e커머스 시장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1등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쿠팡이 빠른 배송과 함께 가장 공을 들이는 부문은 쇼핑 검색이다. 쿠팡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을 검색할 때 포털이 아니라 쿠팡을 찾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쿠팡은 현재 500만 종인 상품을 1000만 종으로 늘려 구색을 강화할 계획이다. 광고와 ‘댓글 알바’에 오염되지 않은 솔직한 상품평을 독려하는 것도 ‘검색의 쿠팡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상품 정보와 상품평 데이터를 결합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상생 기업’ 프레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빠른 정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판매자가 배송을 완료한 다음날 대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반해 쿠팡은 최장 60일이 걸리는 정산 문제로 인해 ‘로켓정산법’이 국회에 상정돼 있을 정도로 중소 상인과의 상생에서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

‘규제 리스크’ 측면에서도 쿠팡이 불리하다. 물류센터를 운영하며 배송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쿠팡은 상대적으로 노동 이슈에 취약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단체의 집중 표적이 될 소지도 크다. 국회 관계자는 “쿠팡이 대관팀을 네이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운영하는 것도 각종 규제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라고 전했다.

박동휘/김주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