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정치권 모르쇠에 곪아버린 '젠더갈등' [성상훈의 정치학개론]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대학시절 수강했던 정치학 수업에서 '정치'란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는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정치인이란 갈등을 조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젠더 문제에서만큼은 '정치'가 실종된 것 같습니다. 민감한 문제라는 이유로, 건드려서 좋을게 없다는 이유로 갈등 조정자로 나서는 정치인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표를 위해 갈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젠더 갈등 앞에서 '표계산'

표를 위해 갈등을 유발한다는건 과도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권의 모르쇠 속 젠더갈등이 제도권 정치 밑에서 곪아간다는건 분명합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정치인도 젠더이슈와 관해서는 '바보'가 됩니다. 정치,경제, 사회, 문화 거의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 '달변가'의 모습이던 정치인도 젠더 문제를 물어보면 얼버무리는 걸 말고는 별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워낙 민감한 문제라는 건 동의합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이후 작성했던 '이대남' 관련 기사를 쓴 후 길지 않은 기자 생활 중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20대 남성들이 돌아섰던 이유에는 페미니즘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식의 기사가 발단이 됐습니다.

한쪽은 '정부 여당에 대한 20대 남성의 외면이 '페미니즘' 문제 때문이라는걸 왜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었고, 다른 한쪽은 '20대 남성의 표심을 왜 과다하게 의미부여를 하느냐'는 문제제기였습니다. 역시나 건드려서 '얻을게 없는' 문제였던 셈입니다. 정치인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나날히 악화되는 젠더갈등

지난 2016년 안타까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성별갈등이 특히 심화됐다.
지난 2016년 안타까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성별갈등이 특히 심화됐다.
하지만 정치권이 외면하는 사이 20·30 세대를 중심으로한 젠더갈등은 나날히 악화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은 이미 젠더 문제의 전쟁터가 됐습니다. 젠더이슈와 관련된 내용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기사에는 기사의 주제와 관계없이 서로의 성을 탓하는 댓글이 주를 이룹니다. 20·30대 남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20·30 여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쉴새없이 서로의 성을 탓하는 글이 가장 추천을 많은 받은 소위 '베스트글'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온라인 여론이 곧 그 세대의 여론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적지 않은 갈등이 수면 아래에서 끓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오프라인에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여성가족부가 39세 이하 남녀를 대상으로 성평등 인식을 조사했더니 여성 74%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남성은 18.6%만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남성의 51.7%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한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만난 많은 20대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위주 사회에 대한 불만, 친여성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불만을 표출하는 20대 남성을 향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여성도 있었습니다.

20대 남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성들은 "극단적 페미니즘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역차별을 받고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특혜 때문에 젊은 세대의 남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서로의 입장에서 의견이 다른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중요한건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에 이르기 위해 소통하는 과정입니다.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연결고리 역할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합니다.

대통령까지 '모른체'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젊은 남녀간의 갈등이 있다는건 잘알고 있다. 하지만 특별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특별한게 아니다'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이었는지는 해석이 갈릴 수 있지만, 적극적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다음 세대로 '갈등 조정자로의 의무'를 넘기는 일종의 '채무 유예성' 발언으로 해석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들어 젠더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정치인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부분적 논쟁에 그치고 있습니다. 여전히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논쟁이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로 보입니다.

시끄러운 싸움으로 비칠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치권에서의 논쟁은 지금보다는 더 시끄러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히 수면아래 존재하는 갈등임에도 아무도 다루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젠더 문제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관측합니다. 이미 20·30 세대의 밥상과 술자리에서 영호남 갈등, 보수·진보의 이념 갈등 같은 의제는 더이상 잘 오르내리지 않는 문제가 됐습니다.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미국, 유럽 등 정치 역사가 더 긴 한발짝 더 나간 정치선진국들의 사례를 비춰봐도 비슷한 결론입니다. 이미 이나라들에서 젠더이슈, 퀴어이슈 등은 더이상 '변방의 쟁점'이 아니게 됐습니다.

이제는 정치인들이 선제적으로 용기를 내야할 시점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젠더 갈등을 중재하는 정치인의 모습, 이제는 볼 수 있을까요?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