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언 안양대 교수
전주언 안양대 교수
몇 달 전 저녁 운동을 마친 후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서 체육관 아래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IPA 맥주에 빠져 있었던 필자는 수제맥주가 진열된 냉장고에 가서 맥주를 고르던 중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그 브랜드’를 마주하고 말았다.

‘말표’
20여년 전 선임들의 전투화에 광을 내며 지겹도록 마주했던 말표 구두약. 전역 후 말표 구두약과는 이별했다고 생각했건만 그 말표가 맥주로 진열된 모습을 보고 필자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곰표 밀맥주와 말표 흑맥주(malpyo.co.kr)
곰표 밀맥주와 말표 흑맥주(malpyo.co.kr)
‘이것도 부캐인가? 설마 맥주에서 구두약 맛 나는 건 아니겠지?’

이뿐만이 아니다. 밀가루로 알려진 대한제분의 ‘곰표’도 밀맥주를 소개했고, 국내 조미료를 대표하는 ‘미원’은 맛소금 팝콘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소주의 대명사 하이트진로의 ‘두꺼비’는 젤리, 초콜릿, 그리고 휴지까지 그 영역을 넓히며 편의점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러한 브랜드들의 파격 행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말표, 곰표, 미원, 그리고 두꺼비는 모두 국내 시장에서 오랫동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장수 브랜드라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에 이러한 장수 브랜드들의 행보를 브랜드 확장 전략(brand extension strategy)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브랜드 확장이란 기존에 구축된 브랜드 자산(brand equity)을 기반으로 모브랜드(parent brand) 네임을 활용해 신제품에 적용하는 전략이다. 위에 언급된 브랜드들은 브랜드 확장 중 제품범주확장(category extension)을 시도한 경우다. 모브랜드(말표)의 제품군(구두약)이 아닌 다른 제품군(맥주)으로 모브랜드를 확장했기에 제품범주확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존 마케팅 분야에서는 성공적인 브랜드 확장 조건으로 모브랜드와 확장브랜드 간의 적합성(fit)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즉 기존의 모브랜드 제품속성과 확장을 고려하는 제품군의 속성이 유사(feature similarity)하거나 혹은 이미지 상의 일관성(concept consistency)을 확보해야 성공적인 브랜드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브랜드들은 기존에 논의되었던 성공적인 브랜드 확장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구두약-맥주 혹은 밀가루-맥주는 속성이 유사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지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소주와 젤리는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그 적합성을 찾기 힘들 것이다(독자께서 소주 안주로 젤리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브랜드 확장 이론 관점에서는 이러한 장수 브랜드들의 활약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장수 브랜드에 대해 고객들이 갖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가 세대별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의 경우 장수 브랜드는 과거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반면에 MZ세대들의 경우 해당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풍부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즉 곰표, 말표, 두꺼비, 그리고 미원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지 않기에 새로운 제품군에 적용되었다 한들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게다가 각각의 브랜드 캐릭터들은 요즘 트렌드에 맞춰 새롭게 태어났으니 MZ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말표’가 군시절 사용했던 구두약이 먼저 떠오르지만 MZ세대들에게는 프셰발스키 야생말이 보리를 입에 물고 있는 흑맥주로 인식될 수 있다.
코닥 어패럴(hilightbrands-kodak.co.kr/index.html)
코닥 어패럴(hilightbrands-kodak.co.kr/index.html)
올해 초 연구실로 상담 온 학생에게 ‘코닥(KODAK)’에 대해 알려주다가 세대 차이를 경험했다. 필자에게 코닥은 2012년에 파산 위기에 몰렸던 ‘비운’의 필름 브랜드이지만 그 학생에게는 배우 정해인이 모델로 활약하는 ‘힙한’ 패션 브랜드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필자는 코닥 어패럴을 입을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