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잊힌 아버지 박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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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프롤로그>
어릴 적 아버지는 무척 엄한 존재로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식구가 눈치를 보곤 했다. 그것은 어려웠던 시절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임감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박서방, 1960>에서 주인공 아버지는 미장이 일을 해서 자식들을 키우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의 고집과 고루한 가치관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러 가지 세파를 겪으면서 결국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게 된다. 금전만능주의와 서구식 가치관의 빠른 침투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는 아버지(박서방)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영화 줄거리 요약>
구공탄 아궁이 미장이 박서방(김승호 분)은 무식하고 고집이 세지만 선량한 가장이다. 갖은 고생을 하며 혼자서 3남매를 키운 그는 자식들이 더 행복한 미래를 살기를 기대하지만,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원하게 된다. 결국 박서방은 제약회사에 다니는 큰아들 용범(김진규 분)과 점례의 결혼과 작은딸 명순(엄앵란 분)이 회사 동료인 안주식과 결혼도 허락하지만 건달 재천(황해 분)과 사귀는 큰딸 용순(조미령 분)은 강하게 반대한다. 용순은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지자 집을 나가 재천과 살림을 차리고 큰아들 용범은 결혼 후 해외 지사로 나갈 계획을 세운다. 한편 박서방은 작은딸 명순과 사귀는 안주식의 고모에게 불려가서 두 집안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고 수모를 겪는다. 집에 돌아온 그는 큰 아들에게 꼭 성공하라며 외국 지사 발령을 허락하고 큰딸과 재천과의 사이도 허락하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박서방이 상징하는 것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하층민이 겪어야 했던 가치관의 혼돈을 주인공 박서방(기존의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의 상징)과 그 자식들과의 대립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즉 자유의지에 따라 결혼하려는 큰딸을 몰아세우지만 큰딸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게 되고, 그는 결국 자식들의 요구와 근대적 가치관을 수용하게 된다. 세대 간의 화해를 통한 근대와 전근대의 갈등 극복이라는 주제는 문예적 성향의 다음 작품인 <마부, 1961>에서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박서방>은 아시아 영화제에 출품되어 김승호가 최우수 주연상을 받았다
B. 박서방의 외로운 심경을 나타낸 것은?
친구(김희갑 분)에게서 큰딸이 건달과 입맞춤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박서방은 화가 나서 용순을 찾아 나섰다가 그만 다리 밑에 빠지고 둘째 딸 애인 안주식에게 업혀 집으로 오게 된다. 이즈음 지방 제약회사에 다니던 아들 용범이 올라오자 박서방은 집 근처 벤치에 다정히 앉아 아들과 정담을 나누며 그동안 외롭고 소외됐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들을 깊게 신뢰하기에 여러 가지 집안 대소사도 상담하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도 얘기한다. 1967년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영화<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도 백인 처녀와 흑인 남성과의 결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가 부모와의 갈등과 해결 과정에서 비슷한 문화적 충돌 과정을 느낄 수 있다.
C. 박서방의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은?
@둘째 딸이 애인과 등산을 가려고 하자 자신도 헬멧을 쓰고 같이 따라나섰다가 중간에 처지게 되고 벼랑에서 미끄러져 '야호'를 외치며 위기를 맞게 되지만 사윗감의 도움으로 구조되면서 딸의 배필로 받아들이게 된다.
@첫째 딸의 애인이 건달들에게 맞아 다쳐 그를 간호하다가 자고 들어온 딸의 뺨을 때리지만 곧 후회를 하게 된다. 애인이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수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면서 박서방도 그들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들이 회사에서 인정받아 5년간 태국 지점장으로 발령 나자, 박서방은 처음에는 섭섭함에 강한 반대를 하다가 결국 아들의 성공을 위해 받아들이게 된다.
D. 박서방이 세상의 변화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계기는?
명순의 애인은 3대 독자로 하와이에 사는 고모가 입국하여 중학교밖에 다니지 않은 명순을 약점 삼지만 사실은 상속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검은 속셈이었다. 한편 안주식이 갑자기 입대를 하자 고모는 박서방을 집으로 불러 모욕감을 주기 위해 집을 들어갈 때부터 대문 대신 쪽문으로 힘겹게 들어오게 하고, 맹견이 짖어 위압감도 준다 결정적인 모욕은 홍차를 처음 먹는 박서방에게 홍차 티백을 까서 태워 먹으라고 하고는 그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웃으며 비웃는다. 고모는 명순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 가문도 형편없어 무식하고 교양 없으니 자신의 조카와 헤어질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귀가하는 길에 비까지 쏟아지자 자괴감에 빠진 박서방은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질책하며 아들은 태국 부임을 허락하고 명순에게는 대학을 가라고 절규한다. <에필로그>
아무리 자식 앞에서 엄한 아버지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식 자랑을 하면서 삶의 위안을 느끼게 된다. 박서방도 생일날 아들이 선사한 시계와 딸이 선물한 구두에 만족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가출한 큰딸의 걱정에 상심이 깊다. 마침내 가족 간의 화해를 이뤄낸 뒤 큰 아들은 결혼식장에서 그동안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잘 키워준 부모님께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치 민들레가 홀씨 되어 날아가듯 이역만리로 떠나게 된다. 최근 사회와 가정에서 궁지에 몰린 아버지들의 위기에서 '박서방의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강한 사랑'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어릴 적 아버지는 무척 엄한 존재로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식구가 눈치를 보곤 했다. 그것은 어려웠던 시절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임감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박서방, 1960>에서 주인공 아버지는 미장이 일을 해서 자식들을 키우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의 고집과 고루한 가치관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러 가지 세파를 겪으면서 결국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게 된다. 금전만능주의와 서구식 가치관의 빠른 침투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는 아버지(박서방)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영화 줄거리 요약>
구공탄 아궁이 미장이 박서방(김승호 분)은 무식하고 고집이 세지만 선량한 가장이다. 갖은 고생을 하며 혼자서 3남매를 키운 그는 자식들이 더 행복한 미래를 살기를 기대하지만,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원하게 된다. 결국 박서방은 제약회사에 다니는 큰아들 용범(김진규 분)과 점례의 결혼과 작은딸 명순(엄앵란 분)이 회사 동료인 안주식과 결혼도 허락하지만 건달 재천(황해 분)과 사귀는 큰딸 용순(조미령 분)은 강하게 반대한다. 용순은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지자 집을 나가 재천과 살림을 차리고 큰아들 용범은 결혼 후 해외 지사로 나갈 계획을 세운다. 한편 박서방은 작은딸 명순과 사귀는 안주식의 고모에게 불려가서 두 집안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고 수모를 겪는다. 집에 돌아온 그는 큰 아들에게 꼭 성공하라며 외국 지사 발령을 허락하고 큰딸과 재천과의 사이도 허락하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박서방이 상징하는 것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하층민이 겪어야 했던 가치관의 혼돈을 주인공 박서방(기존의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의 상징)과 그 자식들과의 대립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즉 자유의지에 따라 결혼하려는 큰딸을 몰아세우지만 큰딸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게 되고, 그는 결국 자식들의 요구와 근대적 가치관을 수용하게 된다. 세대 간의 화해를 통한 근대와 전근대의 갈등 극복이라는 주제는 문예적 성향의 다음 작품인 <마부, 1961>에서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박서방>은 아시아 영화제에 출품되어 김승호가 최우수 주연상을 받았다
B. 박서방의 외로운 심경을 나타낸 것은?
친구(김희갑 분)에게서 큰딸이 건달과 입맞춤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박서방은 화가 나서 용순을 찾아 나섰다가 그만 다리 밑에 빠지고 둘째 딸 애인 안주식에게 업혀 집으로 오게 된다. 이즈음 지방 제약회사에 다니던 아들 용범이 올라오자 박서방은 집 근처 벤치에 다정히 앉아 아들과 정담을 나누며 그동안 외롭고 소외됐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들을 깊게 신뢰하기에 여러 가지 집안 대소사도 상담하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도 얘기한다. 1967년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영화<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도 백인 처녀와 흑인 남성과의 결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가 부모와의 갈등과 해결 과정에서 비슷한 문화적 충돌 과정을 느낄 수 있다.
C. 박서방의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은?
@둘째 딸이 애인과 등산을 가려고 하자 자신도 헬멧을 쓰고 같이 따라나섰다가 중간에 처지게 되고 벼랑에서 미끄러져 '야호'를 외치며 위기를 맞게 되지만 사윗감의 도움으로 구조되면서 딸의 배필로 받아들이게 된다.
@첫째 딸의 애인이 건달들에게 맞아 다쳐 그를 간호하다가 자고 들어온 딸의 뺨을 때리지만 곧 후회를 하게 된다. 애인이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수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면서 박서방도 그들의 결혼을 허락한다.
@아들이 회사에서 인정받아 5년간 태국 지점장으로 발령 나자, 박서방은 처음에는 섭섭함에 강한 반대를 하다가 결국 아들의 성공을 위해 받아들이게 된다.
D. 박서방이 세상의 변화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계기는?
명순의 애인은 3대 독자로 하와이에 사는 고모가 입국하여 중학교밖에 다니지 않은 명순을 약점 삼지만 사실은 상속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검은 속셈이었다. 한편 안주식이 갑자기 입대를 하자 고모는 박서방을 집으로 불러 모욕감을 주기 위해 집을 들어갈 때부터 대문 대신 쪽문으로 힘겹게 들어오게 하고, 맹견이 짖어 위압감도 준다 결정적인 모욕은 홍차를 처음 먹는 박서방에게 홍차 티백을 까서 태워 먹으라고 하고는 그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웃으며 비웃는다. 고모는 명순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 가문도 형편없어 무식하고 교양 없으니 자신의 조카와 헤어질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귀가하는 길에 비까지 쏟아지자 자괴감에 빠진 박서방은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질책하며 아들은 태국 부임을 허락하고 명순에게는 대학을 가라고 절규한다. <에필로그>
아무리 자식 앞에서 엄한 아버지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식 자랑을 하면서 삶의 위안을 느끼게 된다. 박서방도 생일날 아들이 선사한 시계와 딸이 선물한 구두에 만족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가출한 큰딸의 걱정에 상심이 깊다. 마침내 가족 간의 화해를 이뤄낸 뒤 큰 아들은 결혼식장에서 그동안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잘 키워준 부모님께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치 민들레가 홀씨 되어 날아가듯 이역만리로 떠나게 된다. 최근 사회와 가정에서 궁지에 몰린 아버지들의 위기에서 '박서방의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강한 사랑'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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