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청춘, 박민영
청춘


박민영


아흔다섯 외할머니가 묻는다.
“정순아 니가 올해 몇이로”

“엄마 내 벌써 쉰아홉이다.”
팔각산을 응시하던 할머니가 읊조린다.
“청춘이네...”

쉰아홉 청춘은
모처럼 청춘답게 웃는다.


[태헌의 한역]
靑春(청춘)

九五外婆問(구오외파문)
貞順今幾歲(정순금기세)
母兮吾業已(모혜오업이)
到達五九歲(도달오구세)
外婆久看八角山(외파구간팔각산)
吟曰依舊是靑春(음왈의구시청춘)
今日五九靑春女(금일오구청춘녀)
特意作笑如靑春(특의작소여청춘)


[주석]
* 靑春(청춘) : 청춘.
九五(구오) : 95세(歲)의 나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 外婆(외파) : 외할머니의 속칭(俗稱). 외할아버지는 ‘외공(外公)’이라고 한다. / 問(문) : 묻다.
貞順(정순) : 시인의 어머니 이름. / 今(금) : 지금. 역자가 원시의 ‘올해’를 줄여 표시한 말이다. / 幾歲(기세) : 몇 살인가?
母兮(모혜) : 엄마! 어머니! ‘兮’는 호격 조사이다. / 吾(오) : 나. / 業已(업이) : 이미, 벌써.
到達(도달) :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에 이르다, ~에 도착하다. / 五九歲(오구세) : 59세.
久看(구간) : 오래도록 보다, 응시하다. / 八角山(팔각산) : 팔각산.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에 있는 산 이름으로 높이는 628m이다. 산 이름은 계곡을 끼고 뾰족한 8개의 암봉(巖峯)이 이어져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吟曰(음왈) : 읊조리며 말하다, 읊조리듯 말하다. / 依舊(의구) : 여전히, 아직.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是(시) : ~이다.
今日(금일) : 오늘.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五九靑春女(오구청춘녀) : 쉰아홉 청춘의 여인. 이 대목의 마지막 글자 ‘女’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特意(특의) : 특별히, 모처럼. / 作笑(작소) : 웃음을 짓다, 웃다. / 如(여) : ~처럼, ~인 듯.


[한역의 직역]
청춘

아흔다섯 외할머니가 묻는다.
“정순아, 지금 몇 살이지?”
“엄마! 내 벌써
쉰아홉이 되었어.”
외할머니가 팔각산을 응시하다가
“아직 청춘이네.”라고 읊조린다.
오늘 쉰아홉 청춘의 여인
모처럼 청춘답게 웃는다.


[한역 노트]
일상의 한 때를 마치 하나의 움짤처럼 만들어 보여주는 이런 시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생활시(生活詩)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생활시는 일단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정겹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환갑이 멀지 않은 정순씨는 당연히 자신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할 의도로 “벌써”라는 어휘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순씨의 어머니, 곧 시인의 외할머니 대답은 다소 뜻밖이었다. 이 의외성이 바로 이 시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시인의 외할머니가 들려준 “청춘이네”라는 이 네 글자는, 기본적으로는 고령인 자기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직은 젊은 딸에 대한 부러움이 함께 작용한 말로 이해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딸의 상대적인 젊음을 칭찬하는 말이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노모의 이 한 마디에 이미 여기저기 관절도 쑤실 나이가 된 쉰아홉의 딸 정순씨는 모처럼 화사하게 웃는다. 이것은 분명 ‘말[言]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독일 출신의 미국 시인인 사무엘 울만(Samuel Ulman)은 그의 나이 일흔 여덟에 쓴 <청춘(Youth)>이라는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예순 살 노인’이라고 하면 듣는 60대가 펄쩍 뛸 노릇이지만, 이 시가 1910년대에 지어진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사실은, ‘청춘’을 물리적으로 등분된 특정한 시간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 '마음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마음의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타인이 선사하는 말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잘은 몰라도 그는 살아있는 한 언제나 청춘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쉰아홉은 물론 60대도 70대도 80대도 청춘일 수가 있다.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청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여생(餘生) 가운데 가장 젊은 날인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청춘으로 살지, 아니면 청춘이 아닌 존재로 살지는 본인 스스로가 결정할 수도 있지만, 타인이 선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요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돈도 품도 들지 않는 선물인 덕담에 그저 인색하기만 하다. 심지어 말 한 마디로 상대방의 억장을 무너지게도 하니, 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묵언수행(黙言修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해는 역자의 집사람과 제법 많은 역자의 친구들, 그리고 역자의 고마운 술동무까지 시 속의 정순씨처럼 쉰아홉이 된 해이다. 다들 올 한 해 잘 보내고 예순 고개 순조롭게 넘기를 고대해 본다. 예순 고개를 넘어봐야 쉰아홉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거 금세 알게 되겠지만, 어쨌거나 그 고갯길 넘어서도 언제나 정순씨와 같은 청춘이기를 빌어본다.

역자는 3연 7행으로 된 원시를 오언 4구와 칠언 4구로 이루어진 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하는 과정에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부득이 원시에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기도 하였다. 짝수 구마다 동자로 압운하였으며, 오언구와 칠언구의 운을 달리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歲(세)’와 ‘春(춘)’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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