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암호화폐 등 모든 자산 가격이 올해 초 대비 한꺼번에 급등하면서 세계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호황을 구가했던 ‘광란의 20년대’(1920년대)나 닷컴 버블로 평가된 1990년대 후반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주식·원자재·코인까지 안오른 게 없다…광란의 자산시장 '거품 공포'

안 오른 게 없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최근 극적인 가격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원자재는 목재다. 근월물인 5월 목재 선물 가격은 지난 23일 1000보드피트(bf)당 1370달러 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올 들어 57.2%, 작년 6월 이후 세 배 뛰었다. 미국에서 주택 건설 및 리모델링 수요는 급증한 반면 벌목 인부 부족 등으로 목재 공급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재 외에도 구리, 백금 등 산업용 금속과 돼지고기, 옥수수 등 식량자원, 가솔린과 서부텍사스원유(WTI) 등 에너지 가격이 올 들어 모두 상승했다. 미 주택 매매는 2006년 이후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등 세계 부동산 시장도 뜨겁다.

미 증시에서는 S&P500지수가 올 들어 23번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11.3% 올랐다. S&P500의 실러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은 최근 20년 동안 최고치인 37.6에 도달했다. 증시 과열 여부를 진단하는 지표로 쓰이는 CAPE의 사상 최고치는 닷컴 버블 시기였던 1999년 12월의 44.2다.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130배 수준이다. 비상장 상태인 미 스타트업들은 1분기에만 690억달러(약 77조원)의 투자금을 조달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 등 주요국 증시도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증시보다 더 뜨거웠던 곳은 암호화폐 시장이다. 암호화폐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6만달러 선을 처음 넘어섰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등이 공급하는 유동성이 흘러들어오면서 최근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시장이 닷컴 버블 시기를 연상케 할 만큼 뜨거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무실 공유기업 위워크의 채권 수익률은 스팩과의 합병설이 흘러나온 지난 1월 이후 25% 뛰었다.

거품에서 도망갈까 VS 올라탈까

시장에서도 슬슬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있다. 미 펀드평가사 모닝스타는 암호화폐 투자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미 자산운용사 에메랄드어드바이저스의 뱅킹앤드파이낸스펀드 등급을 최근 하향 조정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3일 5만달러 선을 내줬다. 이달 초 미 증권사 이트레이드파이낸셜이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70%가량이 현재 증시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 붕괴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예견한 유명 투자자 제러미 그랜섬은 “과거 거품은 경기가 완벽하게 좋아 보일 때 생겼지만 이번에는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호황”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자산시장 호황의 배경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미 중앙은행(Fed)의 채권 매입 및 초저금리 정책 등이 지목된다. 그는 “시장의 자신감이 떨어지고 여러 문제가 동시에 터지게 되면 큰 고통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시장에서 지금 탈출해야 할까. 이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미 자산운용사 캠브리아인베스트먼트의 멥 파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시장 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서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지금 시장에서 떠난다면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