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만큼 빛난 소감…윤여정의 기품, 전세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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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첫 오스카 여우조연상
'미나리' 제작자 브래드 피트에
"우리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나"
품격·재치로 시상식 '들었다놨다'
'미나리' 제작자 브래드 피트에
"우리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나"
품격·재치로 시상식 '들었다놨다'
“유럽분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유정’이라고 부르는데, 제 이름은 윤여정이에요. 오늘만은 여러분 모두 용서해드리겠습니다.”
배우 윤여정의 한마디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스테이션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26일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다.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은 이날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102년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썼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차지한 데 이은 한국 영화사 최고의 영예다. 윤여정은 이 긴장된 순간에도 격조와 재치를 버무린 수상 소감과 인터뷰로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아시아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영화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이다. 74세 노배우의 수상도 이례적이다. 윤여정은 역대 여우조연상 수상자 중 페기 애슈크로프트, 조지핀 헐에 이어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이날 수상자로 호명된 윤여정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수상 소감에는 재치와 여유, 위트가 넘쳤다. 그는 시상자이자 ‘미나리’의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를 향해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있었냐”고 물었다. 세계적인 배우를 만난 데 대한 반가움을 표현한 동시에 영화 현장에서는 못 본 제작자에게 귀엽게 투정을 한 셈. 이 말을 들은 피트는 활짝 웃어 보였다. 시상식 후 열린 간담회에서 윤여정은 “(피트에게) 다음 영화엔 돈을 더 쓰라고도 했다”고 밝혔다.
다른 수상 후보들을 위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와 경쟁하겠느냐”며 다른 후보들을 치켜세웠다. 이어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으므로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다”며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워킹맘’으로서의 벅찬 감격도 재치있게 표현했다. 그는 “두 아들이 항상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하는데,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고 했다. 간담회에서는 오스카 레이스의 중압감도 털어놨다. “나중엔 눈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성원을 보냈지만 난 상을 못 받으면 어쩌나 고민됐고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죠.”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그는 ‘미나리’에서 한국어로 대사를 하며 지극히 한국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연기했다”며 “그럼에도 많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로 첫 노미네이트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분석했다. 외신들도 그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호평했다. LA타임스는 “윤여정이 일요일 밤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전했다. 영화전문매체 인디와이어는 “한국이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계속 오스카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카데미에 앞서 여러 영화제를 거치며 윤여정의 우아하면서도 유쾌한 언변은 많은 화제가 됐다. 봉준호 감독 못지않은 말솜씨에 “한국 영화인들은 전부 말을 잘하는 거냐”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 윤여정의 화상 인터뷰 기사에서 “고요한 존재감과 꾸밈없는 우아함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11일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밝힌 소감도 화제였다. 그는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의견을 개진해왔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도 윤여정은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는 영화의 장이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그는 “무지개도 일곱 가지 색깔이 있다”며 “사람을 인종으로 나누는 것은 좋지 않으며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유쾌하고 재치있는 소감에 시상식 들썩
올해로 데뷔 55년차를 맞은 윤여정은 한국 영화의 반백 년 역사를 함께해왔다. 고(故)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로 스크린에 데뷔해 이번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미나리’에선 독특하면서도 따뜻한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아시아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영화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이다. 74세 노배우의 수상도 이례적이다. 윤여정은 역대 여우조연상 수상자 중 페기 애슈크로프트, 조지핀 헐에 이어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이날 수상자로 호명된 윤여정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수상 소감에는 재치와 여유, 위트가 넘쳤다. 그는 시상자이자 ‘미나리’의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를 향해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있었냐”고 물었다. 세계적인 배우를 만난 데 대한 반가움을 표현한 동시에 영화 현장에서는 못 본 제작자에게 귀엽게 투정을 한 셈. 이 말을 들은 피트는 활짝 웃어 보였다. 시상식 후 열린 간담회에서 윤여정은 “(피트에게) 다음 영화엔 돈을 더 쓰라고도 했다”고 밝혔다.
다른 수상 후보들을 위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와 경쟁하겠느냐”며 다른 후보들을 치켜세웠다. 이어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으므로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다”며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워킹맘’으로서의 벅찬 감격도 재치있게 표현했다. 그는 “두 아들이 항상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하는데,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고 했다. 간담회에서는 오스카 레이스의 중압감도 털어놨다. “나중엔 눈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성원을 보냈지만 난 상을 못 받으면 어쩌나 고민됐고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죠.”
“고요한 존재감과 꾸밈없는 우아함”
윤여정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첫 노미네이트에 상을 받아 더욱 화제가 됐다. 그가 시상식에서 언급한 영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는 여덟 번 후보에 올랐지만 올해도 상을 받지 못했다. 윤여정은 첫 도전인데도 시상식 전부터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됐다.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그는 ‘미나리’에서 한국어로 대사를 하며 지극히 한국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연기했다”며 “그럼에도 많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로 첫 노미네이트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분석했다. 외신들도 그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호평했다. LA타임스는 “윤여정이 일요일 밤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전했다. 영화전문매체 인디와이어는 “한국이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계속 오스카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카데미에 앞서 여러 영화제를 거치며 윤여정의 우아하면서도 유쾌한 언변은 많은 화제가 됐다. 봉준호 감독 못지않은 말솜씨에 “한국 영화인들은 전부 말을 잘하는 거냐”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 윤여정의 화상 인터뷰 기사에서 “고요한 존재감과 꾸밈없는 우아함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11일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밝힌 소감도 화제였다. 그는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의견을 개진해왔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도 윤여정은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는 영화의 장이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그는 “무지개도 일곱 가지 색깔이 있다”며 “사람을 인종으로 나누는 것은 좋지 않으며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