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리즈로 나오는 '금소법 문답'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6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한 달을 맞아 “법 시행 초기 영업 현장의 혼란이 기존 거래 편의 위주의 영업 관행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면서 “소비자 보호와 거래 편의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국내 금융 규제의 후진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응당 법 시행 전 나왔어야 할 가이드라인을 이제야 부랴부랴 마련하고 있다는 것부터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고백과 다를 바 없다.

내용은 더 심각하다. 보도자료에 첨부된 ‘금소법 FAQ(자주 나오는 질문) 답변서’ 자료를 뜯어보면 황당한 사례가 적지 않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 법인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형 공장 분양 사업 등에서 시공사 연대보증이 가능한지에 관한 질의가 대표적이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시공사 보증은 금융회사 관점으로 보면 너무 상식적인 절차에 속한다. 그럼에도 금융사 영업 현장에서는 금융당국에 일일이 질의해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탁상행정에서 나온 금소법 탓이 크다.

금소법은 금융사가 개인이나 법인을 대상으로 대출할 때 제3자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행위를 불공정 영업행위로 간주해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 대신 시행령에다 예외규정을 뒀다. 물론 시행령조차 구체적인 사례를 모두 담지 못해 대부분 금융위가 정하는 금소법 감독규정에 위임했다. 그나마 감독규정에서도 “PF 사업에 따른 이익을 공유하는 법인은 연대보증을 할 수 있다”고만 했다. 그렇다면 단순 시공권도 감독규정상 ‘이익 공유’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는 누가 판단할까.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꼬치꼬치 금융당국에 물어볼 수밖에 없고 다행히(?) 이익 공유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졌다.

FAQ 답변서는 이 같은 사례로 빼곡하다. 심지어 답변서 제목에 ‘3차’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다. 4차, 5차 답변서를 예고한 것이다. 금소법이 ‘금(禁)소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한 행위만 열거하는 ‘포지티브 규제’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면 안 되는 행위만 법에 담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네거티브 규제’는 한국 금융에선 아직 멀고도 험한 길이다.

거대 금융사 앞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금융소비자를 적극 보호하겠다는 당국의 입법 취지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낡은 법체계로 어떻게 금융 혁신 선도 국가를 추구하겠다는 것인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