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칼럼] 나를 부끄럽게 한 '의원 조광일 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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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살아온 햇수도 어느덧 제법 되기도 하고 목회를 한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본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즉 그런대로 괜찮게 살았는가? 를 돌아보는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특히 공평한 처사를 했는가와 공정했는가 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형편의 사람들이 속해 있다. 교회를 개척 하고 지금까지 개척목회를 하다 보니, 때로는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교회를 세워 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일 때도 있었다. 자연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에 대한 선호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 때는 더욱 그렇기도 하다. 마음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가끔은 주변의 가난한 사람보다는 무엇인가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개척목회를 하면서 늘 내면의 나와 씨름을 했던 것 중 하나는 이런 문제였던 것 같다.
한번은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을 통해 좀 부유한 사람이 교회에 잠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나의 모습을 지금 돌아보니, 참 부끄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에게 환심을 사려고 평소의 내 모습과 다른 나를 보거나, 아내에게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해보라고 하면서, 억지로 그 사람과 같이 교회 가서 철야기도를 하라고 권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참 부끄럽고 한심한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은사 중 한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연세 대학 총장을 역임하시고 감리교단의 신망이 높았던 은사는 강의 시간에 ‘절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똑 같이 대하라’고 하면서 당신이 목회하실 때 경험을 들려주셨다. 당신은 심방을 할 때는 똑 같이 한다는 것이다. 있는 자라고 한 번 더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지난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금 더 생각나게 한 글을 읽었다. 1752년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와 평안도 관찰사,대제학,이조 판서와 예조 판서를 지낸 홍양호(1724-1802)가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에 머물 때였다. 지금의 당진지역에서 지켜보았던 조생이라는 의원 이야기이다. 일종의 전(傳)이다. 원제는 <침은 조광일>이다.
조광일의 고백을 보자. “저는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라 제 뜻을 이루려 의술을 펼치기에 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의 의원을 미워합니다. 그들은 가진 의술을 빙자하여 남들에게 교만하게 굴지요. 문밖에는 그를 초빙하러 온 말들이 늘어서고, 집에서는 굴과 고기를 차려 놓고 대접합니다. 서너 번은 부탁해야 치료하러 가고, 또 가는 곳은 힘 있는 집이 아니면 부유한 집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몸이 편치 않다고 거절하거나 부재중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백번 청해도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먹을 마음입니까! 제가 전적으로 민간에나 다니면서 존귀하고 세력 있는 자들을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자들을 벌하고 싶어섭니다. 저 귀하고 현달한 자들이야 우리 같은 의원이 어찌 드물겠습니까! 불쌍한 이들은 여항의 가난한 백성입니다. 또 제가 침을 잡고 사람들 사이에 노닌 것이 십여 년입니다.“
이 말을 듣고 홍양호의 조광일 평을 보자. “요새 사람들은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바로 세상에 팔리기를 구하고, 남에게 조금만 은혜를 베풀어도 계약서를 쥐고 값을 요구한다. 권세와 이익을 쥔 사람들 틈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얻을 것이 없으면 침을 뱉고 돌아보지 않는다. 조생은 의술이 고명하나 명성을 구하지 않고, 넓게 베풀고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위급한 병자에게 달려가되 반드시 처지가 딱하고 힘없는 사람을 먼저 찾아가니 남보다 훨씬 어질다. 사람 천명을 살리면 반드시 음보(陰報)를 누린다고 한다. 조생은 이 나라에서 훌륭한 후손을 둘 것이다.”(『한국산문선 7』인용)
수 백 년이 흘렀어도 조광일이라는 의원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어디 의술을 하는 의원만 그러겠는가? 정치를 하는 사람. 목회를 하는 종교인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리라고 본다. 여기저기서 정도를 벗어나서 들려오는 잡음과 시끄러운 소음을 많이 듣는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그래도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힘이 되고 도움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보기가 점점 어렵다. 어쩌면 예수정신은 조광일 같은 사람의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약2:1-4)“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 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약2:9)“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조광일의 ‘이것이 어진 사람이 먹을 마음입니까!’ 라는 말이, 뇌리에 오래 여운을 남길 것 같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고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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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한번은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을 통해 좀 부유한 사람이 교회에 잠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나의 모습을 지금 돌아보니, 참 부끄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에게 환심을 사려고 평소의 내 모습과 다른 나를 보거나, 아내에게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해보라고 하면서, 억지로 그 사람과 같이 교회 가서 철야기도를 하라고 권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참 부끄럽고 한심한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은사 중 한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연세 대학 총장을 역임하시고 감리교단의 신망이 높았던 은사는 강의 시간에 ‘절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똑 같이 대하라’고 하면서 당신이 목회하실 때 경험을 들려주셨다. 당신은 심방을 할 때는 똑 같이 한다는 것이다. 있는 자라고 한 번 더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지난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금 더 생각나게 한 글을 읽었다. 1752년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와 평안도 관찰사,대제학,이조 판서와 예조 판서를 지낸 홍양호(1724-1802)가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에 머물 때였다. 지금의 당진지역에서 지켜보았던 조생이라는 의원 이야기이다. 일종의 전(傳)이다. 원제는 <침은 조광일>이다.
조광일의 고백을 보자. “저는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라 제 뜻을 이루려 의술을 펼치기에 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의 의원을 미워합니다. 그들은 가진 의술을 빙자하여 남들에게 교만하게 굴지요. 문밖에는 그를 초빙하러 온 말들이 늘어서고, 집에서는 굴과 고기를 차려 놓고 대접합니다. 서너 번은 부탁해야 치료하러 가고, 또 가는 곳은 힘 있는 집이 아니면 부유한 집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몸이 편치 않다고 거절하거나 부재중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백번 청해도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먹을 마음입니까! 제가 전적으로 민간에나 다니면서 존귀하고 세력 있는 자들을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자들을 벌하고 싶어섭니다. 저 귀하고 현달한 자들이야 우리 같은 의원이 어찌 드물겠습니까! 불쌍한 이들은 여항의 가난한 백성입니다. 또 제가 침을 잡고 사람들 사이에 노닌 것이 십여 년입니다.“
이 말을 듣고 홍양호의 조광일 평을 보자. “요새 사람들은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바로 세상에 팔리기를 구하고, 남에게 조금만 은혜를 베풀어도 계약서를 쥐고 값을 요구한다. 권세와 이익을 쥔 사람들 틈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얻을 것이 없으면 침을 뱉고 돌아보지 않는다. 조생은 의술이 고명하나 명성을 구하지 않고, 넓게 베풀고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위급한 병자에게 달려가되 반드시 처지가 딱하고 힘없는 사람을 먼저 찾아가니 남보다 훨씬 어질다. 사람 천명을 살리면 반드시 음보(陰報)를 누린다고 한다. 조생은 이 나라에서 훌륭한 후손을 둘 것이다.”(『한국산문선 7』인용)
수 백 년이 흘렀어도 조광일이라는 의원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어디 의술을 하는 의원만 그러겠는가? 정치를 하는 사람. 목회를 하는 종교인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리라고 본다. 여기저기서 정도를 벗어나서 들려오는 잡음과 시끄러운 소음을 많이 듣는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그래도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힘이 되고 도움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보기가 점점 어렵다. 어쩌면 예수정신은 조광일 같은 사람의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약2:1-4)“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 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약2:9)“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조광일의 ‘이것이 어진 사람이 먹을 마음입니까!’ 라는 말이, 뇌리에 오래 여운을 남길 것 같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고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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