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맞선 경제관료들…"복지 통합해 부(負)의 소득세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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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경기지사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국민에게 매달 일정금액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가지 논쟁거리가 있다. 고소득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하는가, 그리고 막대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이다.
고소득자는 지금처럼 세금을 내고, 저소득층은 마이너스의 세율을 적용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부(負)의 소득세' 개념이 부상하는 것도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 지점과 닿아있다는 평가다. 변양호·임종룡·이석준·김낙회·최상목 등 전직 경제관료 5인은 30일 발간한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통해 부의 소득세를 포함한 경제활력 제고방안을 제시했다.
경제정책 어젠다2022에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 구체적인 부의 소득세 구성 방안이 제시돼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역임한 세금 전문가 김낙회 율촌 고문과 기재부 예산실장 출신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은 부의 소득세율을 50%로 정하고 소득이 없는 개인에게 중위소득의 60%에 해당하는 월 50만원(만 18세 미만은 30만원)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연소득 1200만원을 기준으로 적게 벌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더 많이 벌면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소득이 0원인 사람의 과세표준은 -1200만원이다. 여기에 세율 50%를 곱하면 내야할 세금은 -600만원이다. 다시말하면 국가가 이 사람에게 600만원을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300만원을 벌 경우엔 과세표준 -900만원의 절반인 450만원이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120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겐 현행대로 15~45%의 세율을 적용해 과세한다.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과 달리 부의 소득세는 저소득자에게만 집중 지급되는 선별적 복지제도다. 고소득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 기본소득제도보다 역진성이 낮고, 분배를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가구당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달리 개인별로 소득을 주기 때문에 가족 확대의 유인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돈이다. 부의 소득세는 기본소득보다는 지급 범위가 좁고, 금액도 적지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만큼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김 고문과 이 전 실장의 방안대로 최대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면 172조7000억원의 재정이 필요하다.
인적공제와 근로소득공제를 모두 폐지할 경우엔 133조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제도 폐지로 인한 세수 증대 효과 36조2000억원을 감안하면 필요 재원은 97조1000억원으로 계산된다.
분야별로 보면 복지고용분야에서 50조5000억원, 기타 사업분야에서 30조9000억원, 사회복지관련 지방비 10조원, 근로장려세제 5조2000억원 등 지출 구조조정으로 96조6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재원 97조1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OECD국가 대비 낮은 부가세율을 올려 40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일부는 부의 소득세 재원으로 쓰고, 나머지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으로 악화한 재정건전성을 되돌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재원이 마련된다고 해도 부의 소득세를 전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우선 모든 개인의 소득을 파악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책에서는 우선 보조금 지급 신청을 받아 보조금을 지급한 후 1년 후 종합소득세 신고 시 차액을 환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소득금액에 따라 차액 전액을 차감하는 기초생보제와 달리 절반만 차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은 제도라고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소득이 없는 고액 자산가들이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규제완화를 위해 개별 규제를 중심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봤다. 경제 제도와 규제 차원에서 한국이 벤치마크할 수 있는 국가를 '기준국가'로 선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당 국가의 모든 규제 수준을 분석해 한국의 규제를 즉시 완화 또는 철폐하는 식이다.
기준국가 후보로는 세계은행과 스위스국제경영개발대학원, 세계경제포럼의 기업환경 평가, 경쟁력 평가 등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4개 국가 중 한국과 경제 형태나 규모가 비슷한 미국과 스웨덴을 제시했다. 실행방안으로는 현재 국무조정실 산하기구처럼 운영되고 있는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실권을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재벌 구조 등 기업형태도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재부 1차관을 맡았던 최상목 농협대 총장은 비지배주주의 이사 선임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지배주주가 회사 경영 과정에서 과도한 사적 이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견제해야한다는 것이다. 기업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 소유권 이전시 발생하는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저자들은 부의 소득세와 규제 완화, 기업 구조개혁이 개별적으로 추진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패키지 형태로 통합 추진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한번에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던 변양호 VIC파트너스 고문은 "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안전망을 늘리면 경제는 시들 수밖에 없다"며 "좌파 진영은 의미있는 사회 안전망을 얻고, 우파 진영은 대주주 지위를 재정립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썼다. 5인의 저자들은 모두 과거 재정경제부와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며 경제 전문성을 쌓은 경제관료라는 인연이 있다. 행시 19회로 저자 중 선임인 변 고문과 임 전 위원장(24회)은 재경부 시절 금정국에서 호흡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실장(26회) 김 고문(27회), 최 총장(29회) 등은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2차관, 관세청장, 1차관을 맡았다. 사례 조사를 맡은 이찬우 전 기재부 차관보(31회)도 기재부 시절 최 총장 등과 함께 일했다.
강진규 기자
고소득자는 지금처럼 세금을 내고, 저소득층은 마이너스의 세율을 적용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부(負)의 소득세' 개념이 부상하는 것도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 지점과 닿아있다는 평가다. 변양호·임종룡·이석준·김낙회·최상목 등 전직 경제관료 5인은 30일 발간한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통해 부의 소득세를 포함한 경제활력 제고방안을 제시했다.
월급 1000만원도 기본소득이 필요할까
부의 소득세는 1962년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개념이다. 저소득층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조금을 받고 일정 금액 이상을 버는 사람은 현재와 같이 세금을 내는 식이다. 시장경제적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여겨진다.경제정책 어젠다2022에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 구체적인 부의 소득세 구성 방안이 제시돼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역임한 세금 전문가 김낙회 율촌 고문과 기재부 예산실장 출신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은 부의 소득세율을 50%로 정하고 소득이 없는 개인에게 중위소득의 60%에 해당하는 월 50만원(만 18세 미만은 30만원)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연소득 1200만원을 기준으로 적게 벌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더 많이 벌면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소득이 0원인 사람의 과세표준은 -1200만원이다. 여기에 세율 50%를 곱하면 내야할 세금은 -600만원이다. 다시말하면 국가가 이 사람에게 600만원을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300만원을 벌 경우엔 과세표준 -900만원의 절반인 450만원이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120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겐 현행대로 15~45%의 세율을 적용해 과세한다.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과 달리 부의 소득세는 저소득자에게만 집중 지급되는 선별적 복지제도다. 고소득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 기본소득제도보다 역진성이 낮고, 분배를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가구당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달리 개인별로 소득을 주기 때문에 가족 확대의 유인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돈이다. 부의 소득세는 기본소득보다는 지급 범위가 좁고, 금액도 적지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만큼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김 고문과 이 전 실장의 방안대로 최대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면 172조7000억원의 재정이 필요하다.
인적공제와 근로소득공제를 모두 폐지할 경우엔 133조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제도 폐지로 인한 세수 증대 효과 36조2000억원을 감안하면 필요 재원은 97조1000억원으로 계산된다.
아동수당·노인연금·기초생보 폐지해 재원마련
저자들은 재원 마련을 위해선 각종 복지제도의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보장 내용과 형태가 비슷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각종 급여항목을 부의 소득세로 통합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현 정부 들어 급격하게 증가한 노인연금, 아동수당 등 현금성 복지제도 역시 모든 개인에게 부의 소득세에 따른 보조금을 주는만큼 없애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저소득자의 근로의욕 증진을 위해 도입된 근로장려세제도 부의 소득세 체계 내에서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분야별로 보면 복지고용분야에서 50조5000억원, 기타 사업분야에서 30조9000억원, 사회복지관련 지방비 10조원, 근로장려세제 5조2000억원 등 지출 구조조정으로 96조6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재원 97조1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OECD국가 대비 낮은 부가세율을 올려 40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일부는 부의 소득세 재원으로 쓰고, 나머지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으로 악화한 재정건전성을 되돌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재원이 마련된다고 해도 부의 소득세를 전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우선 모든 개인의 소득을 파악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책에서는 우선 보조금 지급 신청을 받아 보조금을 지급한 후 1년 후 종합소득세 신고 시 차액을 환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소득금액에 따라 차액 전액을 차감하는 기초생보제와 달리 절반만 차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은 제도라고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소득이 없는 고액 자산가들이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규제완화·재벌개혁도 통합 추진해야
저자들은 한국 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부의 소득세 도입과 같은 복지제도 정비와 함께 규제완화와 재벌개혁 등 경제부문의 개혁도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규제완화를 위해 개별 규제를 중심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봤다. 경제 제도와 규제 차원에서 한국이 벤치마크할 수 있는 국가를 '기준국가'로 선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당 국가의 모든 규제 수준을 분석해 한국의 규제를 즉시 완화 또는 철폐하는 식이다.
기준국가 후보로는 세계은행과 스위스국제경영개발대학원, 세계경제포럼의 기업환경 평가, 경쟁력 평가 등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4개 국가 중 한국과 경제 형태나 규모가 비슷한 미국과 스웨덴을 제시했다. 실행방안으로는 현재 국무조정실 산하기구처럼 운영되고 있는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실권을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재벌 구조 등 기업형태도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재부 1차관을 맡았던 최상목 농협대 총장은 비지배주주의 이사 선임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지배주주가 회사 경영 과정에서 과도한 사적 이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견제해야한다는 것이다. 기업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 소유권 이전시 발생하는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저자들은 부의 소득세와 규제 완화, 기업 구조개혁이 개별적으로 추진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패키지 형태로 통합 추진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한번에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던 변양호 VIC파트너스 고문은 "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안전망을 늘리면 경제는 시들 수밖에 없다"며 "좌파 진영은 의미있는 사회 안전망을 얻고, 우파 진영은 대주주 지위를 재정립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썼다. 5인의 저자들은 모두 과거 재정경제부와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며 경제 전문성을 쌓은 경제관료라는 인연이 있다. 행시 19회로 저자 중 선임인 변 고문과 임 전 위원장(24회)은 재경부 시절 금정국에서 호흡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실장(26회) 김 고문(27회), 최 총장(29회) 등은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2차관, 관세청장, 1차관을 맡았다. 사례 조사를 맡은 이찬우 전 기재부 차관보(31회)도 기재부 시절 최 총장 등과 함께 일했다.
강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