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꽃이 그랬다,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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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꽃이 그랬다
김영
햇볕이 꽃을 피운다고
말하지 마라
바람이 꽃을 지운다고
탓하지 마라
피는 것도
지는 것도
꽃이 그랬다
[태헌의 한역]
화사지연(花使之然)
日陽開花(일양개화)
吾君莫言(오군막언)
風頭謝花(풍두사화)
吾君莫愆(오군막건)
開事謝事(개사사사)
花使之然(화사지연)
[주석]
*화사지연(花使之然) : 꽃이 <그것을> 그렇게 한 것이다.
日陽(일양) : 햇볕. / 開花(개화) : 꽃을 피게 하다, 꽃을 피우다.
吾君(오군) : 그대, 당신. 원시의 생략된 주어를 보충한 말이다. / 莫言(막언) : 말하지 마라! 예찬하지 말라는 뜻이다.
風頭(풍두) : 바람의 기세. 또는 바람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 謝花(사화) : 꽃을 지게 하다, 꽃을 지우다.
莫愆(막건) : 허물하지 마라, 탓하지 마라!
開事(개사) : <꽃이> 피는 일, <꽃을> 피우는 일. / 謝事(사사) : <꽃이> 지는 일, <꽃을> 지우는 일.
[한역의 직역]
꽃이 그렇게 한 것이다
햇볕이 꽃을 피운다고
그대 말하지 마라
바람이 꽃을 지운다고
그대 탓하지 마라
피는 일도 지는 일도
꽃이 그렇게 한 것이다
[한역 노트]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꽃의 일생이다. 그리고 꽃은 때가 되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질 따름이다. 이것이 이른바 저절로 그러함, 곧 ‘자연(自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꽃을 피우는 무엇인가를 거론하며 예찬하고, 또 꽃을 지우는 무엇인가를 언급하며 한탄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꽃이 피는 것을 기뻐하고,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감정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그러나 세상 어느 꽃도 사람더러 기뻐하라고 피고, 슬퍼하라고 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에서 “말하지 마라”, “탓하지 마라”고 한 것은, 시인 자신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기쁨과 슬픔으로 간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자면 “피는 것도 / 지는 것도 // 꽃이 그랬다”고 한 데에 ‘시인이 말하고 싶은 뜻’이 오롯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대목은, 꽃이 어떤 외물(外物)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피고 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므로, 꽃의 주체성(主體性)을 강조한 단락으로 이해된다.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저절로 그러한 것이니 무엇도 기리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결국 이 시의 개요(槪要)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시의 함의가 단순히 여기에 그칠 뿐이라면, 굳이 ‘시인이 말하고 싶은 뜻’을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역자는, 시인이 ‘꽃이 피거나 지는 것을 꽃이 그랬다’고 언급한 대목을 일종의 비유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꽃이 피는 것으로 일의 시작을, 꽃이 지는 것으로 일의 마무리를 비유한 것으로 본다면, ‘시인이 말하고 싶은 뜻’을 어느 정도 읽어낸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어떤 일을 온전히 하자면, 그것이 무엇이든 시작도 마무리도 결국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 시작과 마무리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나 내가 하는 행동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그에 수반하는 책임 또한 나의 몫이 된다. 그런데도 모종의 일이 벌어진 후에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탓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치졸이자 떳떳하지 못한 비겁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탓하는 일이 없다면, 그는 스스로 피어나 아름답게 존재하다가 스스로 총총히 사라지는 꽃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장미와 같은 꽃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그 칭호는 어쩌면 무색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꽃들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꽃이 피는 것을 기뻐하고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감정에만 함몰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신일철(申一澈) 선생의 아래 글을 읽어보면 우리가 꽃에게 배워야 할 것이 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다가 5월이 공부의 계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김영
햇볕이 꽃을 피운다고
말하지 마라
바람이 꽃을 지운다고
탓하지 마라
피는 것도
지는 것도
꽃이 그랬다
[태헌의 한역]
화사지연(花使之然)
日陽開花(일양개화)
吾君莫言(오군막언)
風頭謝花(풍두사화)
吾君莫愆(오군막건)
開事謝事(개사사사)
花使之然(화사지연)
[주석]
*화사지연(花使之然) : 꽃이 <그것을> 그렇게 한 것이다.
日陽(일양) : 햇볕. / 開花(개화) : 꽃을 피게 하다, 꽃을 피우다.
吾君(오군) : 그대, 당신. 원시의 생략된 주어를 보충한 말이다. / 莫言(막언) : 말하지 마라! 예찬하지 말라는 뜻이다.
風頭(풍두) : 바람의 기세. 또는 바람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 謝花(사화) : 꽃을 지게 하다, 꽃을 지우다.
莫愆(막건) : 허물하지 마라, 탓하지 마라!
開事(개사) : <꽃이> 피는 일, <꽃을> 피우는 일. / 謝事(사사) : <꽃이> 지는 일, <꽃을> 지우는 일.
[한역의 직역]
꽃이 그렇게 한 것이다
햇볕이 꽃을 피운다고
그대 말하지 마라
바람이 꽃을 지운다고
그대 탓하지 마라
피는 일도 지는 일도
꽃이 그렇게 한 것이다
[한역 노트]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꽃의 일생이다. 그리고 꽃은 때가 되면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질 따름이다. 이것이 이른바 저절로 그러함, 곧 ‘자연(自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꽃을 피우는 무엇인가를 거론하며 예찬하고, 또 꽃을 지우는 무엇인가를 언급하며 한탄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꽃이 피는 것을 기뻐하고,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감정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그러나 세상 어느 꽃도 사람더러 기뻐하라고 피고, 슬퍼하라고 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에서 “말하지 마라”, “탓하지 마라”고 한 것은, 시인 자신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기쁨과 슬픔으로 간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자면 “피는 것도 / 지는 것도 // 꽃이 그랬다”고 한 데에 ‘시인이 말하고 싶은 뜻’이 오롯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대목은, 꽃이 어떤 외물(外物)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피고 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므로, 꽃의 주체성(主體性)을 강조한 단락으로 이해된다.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저절로 그러한 것이니 무엇도 기리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결국 이 시의 개요(槪要)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시의 함의가 단순히 여기에 그칠 뿐이라면, 굳이 ‘시인이 말하고 싶은 뜻’을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역자는, 시인이 ‘꽃이 피거나 지는 것을 꽃이 그랬다’고 언급한 대목을 일종의 비유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꽃이 피는 것으로 일의 시작을, 꽃이 지는 것으로 일의 마무리를 비유한 것으로 본다면, ‘시인이 말하고 싶은 뜻’을 어느 정도 읽어낸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어떤 일을 온전히 하자면, 그것이 무엇이든 시작도 마무리도 결국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 시작과 마무리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나 내가 하는 행동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그에 수반하는 책임 또한 나의 몫이 된다. 그런데도 모종의 일이 벌어진 후에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탓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치졸이자 떳떳하지 못한 비겁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탓하는 일이 없다면, 그는 스스로 피어나 아름답게 존재하다가 스스로 총총히 사라지는 꽃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장미와 같은 꽃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그 칭호는 어쩌면 무색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꽃들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꽃이 피는 것을 기뻐하고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감정에만 함몰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신일철(申一澈) 선생의 아래 글을 읽어보면 우리가 꽃에게 배워야 할 것이 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다가 5월이 공부의 계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뜰 앞에 화초를 가꾸면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화초는 말이 없다. 꽃을 피우고도 ‘내가 이렇게 아름답게 피었노라’고 으스대지 않는다. 내가 찾아가서 보아 준다고 해도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도 없다. 그저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식물(植物)의 교훈(敎訓)> 중에서4연 7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사언(四言) 6구의 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하는 과정에서 원시에 없는 시어를 일부 보태기도 하였다. 이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言(언)’·‘愆(건)’·‘然(연)’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