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다시 불거진 '김여정 하명수사' 논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일 이 같은 특별 지시를 내렸다. 탈북민 출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달 30일 전단 50만 장 등을 살포했다고 밝힌 것에 대한 첫 반응이다. 3월 전단 살포 시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는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이 시행된 만큼 사정기관장이 관련법에 따라 수사를 지시하는 것은 언뜻 보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김 청장의 ‘엄정 수사’ 지시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남조선 당국은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는 내용의 담화를 내놓은 직후 나왔다. 박 대표가 “2000만 북한 동포들에게 진실을 말할 것”이라며 직접 관련 사실을 공개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다.

통일부 역시 김여정 담화에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며 신속하게 입장을 내놓았다. 굳이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라는 단서를 달아 긴장 조성 당사자에 북한뿐 아니라 전단 살포 단체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게끔 여지를 남겼다. 통일부 차원의 별도 수사 의뢰 조치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처벌법이 있는 만큼 “엄정 수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국내 일각에서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6월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김여정의 담화 직후 발의됐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북한이 자유를 찾아 넘어온 우리 국민들을 ‘쓰레기’라 지칭한 데 이어 170여억원의 우리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했지만 강경 대응은커녕 서둘러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시행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국제사회의 반발에는 눈과 귀를 모두 닫았다.

경찰청은 김 청장의 ‘엄정 수사’ 지시를 전하며 “한·미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전단과 관련해 미온적이고 초동 조치가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김 청장의 질책이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정기관장이 수사에 한·미 정상회담 일정까지 염두에 둔다는 점도 경이롭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엄정 수사해야 한다는 인식은 더욱 놀랍다.

인권을 앞세운 ‘가치 외교’를 천명한 미국은 지난달 30일 이번 전단 살포와 관련해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미국은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증진하기 위해 비영리 및 탈북민 단체들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국 의회는 이 법을 두고 유신 정권 이후 처음으로 한국 인권 관련 청문회까지 열었다. 한국이 ‘김여정 하명법’ 제정에 이어 ‘김여정 하명 수사’까지 나섰다고 국제사회에 비칠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