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누그러지면서 소비자 수요는 달아오르는데 기업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애플을 비롯해 미국 주요 기업은 수요 급증에 힘입은 1분기 실적과 수주 내역을 공개하면서도 “반도체 칩을 비롯한 원재료와 근로자 부족, 물류 비용 증가 때문에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마비됐지만, 최근엔 백신 접종 확대와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효과로 수요부터 살아난 결과”라고 2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원재료 구하기 힘들어

지난 3월 미국의 개인소득은 전달보다 21.1% 증가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소득 증가에 힘입어 개인 소비지출도 전월 대비 4.2% 늘었다. 이처럼 수요가 치솟는데도 미국 주요 기업은 마냥 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요에 맞춰 공급을 바로 늘릴 수 없는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칩 부족이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애플은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하면서도 “반도체 칩 부족 탓에 2분기 매출은 40억달러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중장비 제조업체 캐터필러는 경제 재개 효과로 1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수주 주문이 밀려들고 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연말에는 수요에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주요 자동차 기업은 생산 공장 가동을 멈췄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반도체 칩 부족 여파가 직접적으로 미치는 업종은 양조, 섬유 등 169개에 이른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칩 부족 문제가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차량용 반도체 칩 제조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템퍼씰리는 침대 매트리스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질과 내장 스프링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1분기 매출이 예상보다 1억달러 줄어든 10억달러에 그쳤다고 밝혔다. 3M도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 비용 증가로 올해 주당순이익(EPS)이 50센트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발 제조사 크록스와 스티븐매든은 운임 상승 파장을 걱정하고 있다.

근로자 찾기 어려워

도미노피자는 피자 배달 수요를 충족할 배달 직원이 부족하다. 도미노피자는 시간당 배달 가능 건수를 늘려 근로자의 실질임금을 올려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맥도날드 등 식음료 기업들은 기존 근로자 유지와 신규 직원 확보를 위해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일각에선 주당 300달러인 실업수당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근로자 부족은 시장 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선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의 인기가 폭발하고 있지만 맥도날드 등은 닭고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닭고기 가공 근로자가 부족해서다. 닭고기 가공업체인 필그림은 근로자 퇴사를 막기 위해 올해에만 4000만달러(약 450억원)를 더 쓰기로 했다. 아마존이 이달부터 다음달에 걸쳐 미국 내 근로자 50만 명의 시급을 0.5~3달러씩 올리기로 결정하는 등 근로자 확보를 위한 임금 인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이 주도하는 ‘제2의 기회 기업연합’은 지난달 GM, 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MS), 월마트 등 미국 주요 기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전과자 고용 확대를 목표로 하는 이 단체에 기업들이 동참한 배경 중 하나로 근로자 확보가 꼽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비용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전회사 월풀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5~12% 인상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앞서 프록터앤드갬블(P&G)과 코카콜라도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