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 택배 논란에 '갑질 아파트' 프레임 씌운 민주노총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고덕그라시움은 4932세대가 모여 사는 평화로운 아파트 단지다. 5층짜리 주공 아파트는 2019년 지상 35층 ‘마천루’로 변신했다. 요즘 유행인 공원식 아파트의 전형이다. 서울에서 여덟 번째로 많은 주민이 사는 단지라고 한다. 한강변의 ‘조용한 낙원’이었던 이곳이 요즘 택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들은 졸지에 ‘갑질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민주노총은 총파업 엄포까지 놓고 있다.
택배기사들도 처음엔 불편했지만, 점차 순응해하고 있었다. 탑차를 저상(로우탑)으로 바꾸는데 따른 비용 문제와 적재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인한 번거로움은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택배 폭주’로 어느 정도 상쇄됐다. 주공 아파트 시절엔 차량 한 대면 충분했던 택배가 요즘은 하루에 12대가 돌아다녀야 할 만큼 물량이 급증했다. CJ대한통운 소속 택배차량만 해도 6대 중 절반이 저상 차량으로 바꼈다.
민주노총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엔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 간부 등 2명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유인물을 돌리다가 경찰에 인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주노총 개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 지는 고덕그라시움 입주자 대표가 게시한 글만 봐도 짐작할 만하다. “지상 차량통행 금지(4월1일) 이후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가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교묘한 전략으로 우리 아파트 단지를 이용하고 여기에 일부 언론이 편승하여 갑질 프레임을 설정해 놓고…(중략)…우리 아파트 배송 차량이 아닌 불상의 차량을 이용하여 방송국 기자를 대동하고 상가 앞에서 손수래 배송을 하는 연출 방송을 찍고…(중략)”.
‘민주노총의 목적’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주목할 만하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CJ대한통운, 한진, 롯데로지스틱스 같은 택배 회사들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과 일방적으로 합의해 택배 기사들이 지상으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고, 허리를 펼 수도 없는 저상 차량으로 개조하도록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택배회사들은 “대리점주들이 각 지역별 사정에 따라 입주민들과 대화를 했을 지는 몰라도 본사에서 개별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과 협의를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쿠팡,쓱닷컴은 물론이고, DHL 등 외국계 택배사들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 층고가 낮은 곳들에 드나들 수 있도록 저상 차량을 운행 중이다. 하지만 배송 기사들이 허리를 펴지 못해 불만이라는 얘기는 거의 없다. 단순한 기술 하나가 차이를 만들었다. 쿠팡 등이 운행하는 저상 차량엔 ‘사이드 슬라이딩 도어’가 달려 있다. 쉽게 말해 옆에도 문이 달렸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이 ‘방송용’으로 시연한 차량엔 옆문이 없는 터라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물건을 내릴 수 밖에 없다.
탑차가 제조사에 출고될 때 원래 높이는 2.5m다. 개인 자영업자인 택배기사들은 편의에 따라 이를 개조하곤 한다. 적재함 위에 물건을 더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기도 하고, 돈을 좀 더 들이면 ‘하이탑’으로 개조도 할 수 있다. 최근엔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가 낮아져 저상 차량으로 개조도 꽤 이뤄지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잘 읽은 택배기사들은 저상으로 차를 개조할 때 옆문도 단다.
‘옆문’ 하나 달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놓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며 6일 찬반투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택배회사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자비를 들여 옆문을 달아야 하는 현실이 문제라면, 직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택배사에 요청하면 될 일이다. 민주노총도 총파업 등 ‘투쟁기금’으로 적립해 놓은 돈을 차라리 이런 일에 쓰면 좋지 않을까.
박동휘 기자
유린당한 아파트 주민들의 삶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제법 복잡해 보이고,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파급력이 커 보이지만, 의외로 이번 사안은 단순하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 아파트 주민들은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원했을 뿐이다. 택배 차량이 지하 주차장으로 드나들도록 함으로써 공원형 지상이라는 주거 인프라를 온전히 사용하고 싶어했다.택배기사들도 처음엔 불편했지만, 점차 순응해하고 있었다. 탑차를 저상(로우탑)으로 바꾸는데 따른 비용 문제와 적재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인한 번거로움은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택배 폭주’로 어느 정도 상쇄됐다. 주공 아파트 시절엔 차량 한 대면 충분했던 택배가 요즘은 하루에 12대가 돌아다녀야 할 만큼 물량이 급증했다. CJ대한통운 소속 택배차량만 해도 6대 중 절반이 저상 차량으로 바꼈다.
민주노총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엔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 간부 등 2명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유인물을 돌리다가 경찰에 인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주노총 개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 지는 고덕그라시움 입주자 대표가 게시한 글만 봐도 짐작할 만하다. “지상 차량통행 금지(4월1일) 이후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가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교묘한 전략으로 우리 아파트 단지를 이용하고 여기에 일부 언론이 편승하여 갑질 프레임을 설정해 놓고…(중략)…우리 아파트 배송 차량이 아닌 불상의 차량을 이용하여 방송국 기자를 대동하고 상가 앞에서 손수래 배송을 하는 연출 방송을 찍고…(중략)”.
‘민주노총의 목적’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주목할 만하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CJ대한통운, 한진, 롯데로지스틱스 같은 택배 회사들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과 일방적으로 합의해 택배 기사들이 지상으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고, 허리를 펼 수도 없는 저상 차량으로 개조하도록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택배회사들은 “대리점주들이 각 지역별 사정에 따라 입주민들과 대화를 했을 지는 몰라도 본사에서 개별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과 협의를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저상 차량에 옆문만 달면 해결될 일을…
그렇다면 고덕그라시움은 정말 모든 택배기사들이 싫어하는 ‘갑질 아파트’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쿠팡, 쓱닷컴, DHL 등의 택배는 아무런 문제없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원활하게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참조할 만하다. 쿠팡만 해도 당초 차량 1대가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2대가 들어갈 정도라고 한다. 민주노총 산하 택배기사들이 ‘정치적 논란’으로 키우는 사이에 쿠팡 등 다른 업체들은 호재를 맞은 셈이다.쿠팡,쓱닷컴은 물론이고, DHL 등 외국계 택배사들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 층고가 낮은 곳들에 드나들 수 있도록 저상 차량을 운행 중이다. 하지만 배송 기사들이 허리를 펴지 못해 불만이라는 얘기는 거의 없다. 단순한 기술 하나가 차이를 만들었다. 쿠팡 등이 운행하는 저상 차량엔 ‘사이드 슬라이딩 도어’가 달려 있다. 쉽게 말해 옆에도 문이 달렸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이 ‘방송용’으로 시연한 차량엔 옆문이 없는 터라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물건을 내릴 수 밖에 없다.
탑차가 제조사에 출고될 때 원래 높이는 2.5m다. 개인 자영업자인 택배기사들은 편의에 따라 이를 개조하곤 한다. 적재함 위에 물건을 더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기도 하고, 돈을 좀 더 들이면 ‘하이탑’으로 개조도 할 수 있다. 최근엔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가 낮아져 저상 차량으로 개조도 꽤 이뤄지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잘 읽은 택배기사들은 저상으로 차를 개조할 때 옆문도 단다.
‘옆문’ 하나 달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놓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며 6일 찬반투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택배회사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자비를 들여 옆문을 달아야 하는 현실이 문제라면, 직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택배사에 요청하면 될 일이다. 민주노총도 총파업 등 ‘투쟁기금’으로 적립해 놓은 돈을 차라리 이런 일에 쓰면 좋지 않을까.
박동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