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천문대의 과학과 비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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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천문대에 관측하러 오는 연구자들을 보면서 누가 오니 비가 올 거라고 얘기하고, 누가 오니 맑아질 거라고 얘기하곤 한다. 또 관측 장비가 말썽이면 누구여서 그렇다는 둥 농담을 한다. 통계적으로 20년쯤 두고 오랜 기간 평균을 내면 모두가 거의 비슷한 관측량을 갖지만, 2~3년의 단기간을 두고 얘기하면 이상하게 누군가는 관측을 많이 하고, 누군가는 내내 맑다가도 날이 안 좋아져서 관측을 못 하는 경우가 생긴다.
관측 장비의 말썽을 겪는 관측자는 보통 관측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관측을 많이 하면 당연히 문제를 겪을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예전엔 6월에 관측 시간을 배정하면 하필 장마철에 시간 배정을 했다고 아주 싫어하는 관측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해는 6월 중순 이후까지 날씨가 좋았다. 거의 상반기 관측이 끝나는 6월 하순에 가야 장마 영향이 나타나곤 했다. 단기간의 짧은 통계는 아주 비과학적이지만, 열정을 갖고 열심히 관측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믿음이 있다.
천문대 건설 초창기 몇 년 동안 주변 저수지가 모두 말라버릴 정도로 극심한 봄 가뭄을 겪었는데, 이 기간에 천문대에선 맑은 날이 이어져 관측을 아주 많이 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는 가뭄이 큰 문제여서 보현산 정상의 또 다른 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비가 많이 왔다. 오래전 기억이라 실제 상황과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관측자 입장에서는 천문대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게 아치에 맞는가 하는 생각에 봄이 되면 종종 떠오르는 기억이다. 가뭄이 끝날 즈음에 운 좋게 맞춰 지낸 기우제일 테지만 이상하게 그 이후 봄철의 천문대 관측일 수가 뚝 떨어졌다.
천문대 주변을 돌아다니면 돌탑이 참 많다. 호주나 칠레의 천문대에서는 이런 풍경을 보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돌이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돌탑이 놓인다. 우리만의 문화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어디나 좋은 소망을 갖는 사람의 마음은 같을 테니 외국 천문대에서 돌탑을 보기 어려운 것은 천문대를 찾는 사람의 수가 적은 이유도 있다. 보통의 외국 천문대는 오지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지만, 보현산천문대에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20년을 빼면 연간 4만 명 이상 다녀간다. 요즘도 날씨만 좋으면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 찬다. 참고로 2020년엔 6000명이 채 안 됐다.
4월 마지막 주부터 1.8m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 기간인데, 처음 5일은 구름과 비만 보았다. 그러다 하루 맑아서 밤을 꼬박 새우며 신나게 관측했는데, 기상 상황이 바뀌어서 또 구름이다. 비가 올 수도 있고, 이번 관측은 이미 실패다. 그래도 1년 후를 기대하며 조금이라도 더 관측하려고 날씨가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럴 땐 혹시라도 부정(?) 탈까 봐 안 좋은 날씨를 탓하거나 낮 동안의 좋은 하늘을 보고 밤을 기대하는 설레발을 치는 것도 자제한다.
그런데 요즘은 일기 예보가 좋아져서 그냥 기상청 구름 사진만 보면 관측 가능 여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속 기도가 별 의미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항상 하고 있다. 기대는 기대한 대로 이뤄지면 더 기분 좋은 것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 맑은 날 돌탑과 은하수에 소원을 빌어두는 건데, 지금은 흐려서 별이 안 보여 빌 수가 없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관측 장비의 말썽을 겪는 관측자는 보통 관측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관측을 많이 하면 당연히 문제를 겪을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예전엔 6월에 관측 시간을 배정하면 하필 장마철에 시간 배정을 했다고 아주 싫어하는 관측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해는 6월 중순 이후까지 날씨가 좋았다. 거의 상반기 관측이 끝나는 6월 하순에 가야 장마 영향이 나타나곤 했다. 단기간의 짧은 통계는 아주 비과학적이지만, 열정을 갖고 열심히 관측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믿음이 있다.
천문대 건설 초창기 몇 년 동안 주변 저수지가 모두 말라버릴 정도로 극심한 봄 가뭄을 겪었는데, 이 기간에 천문대에선 맑은 날이 이어져 관측을 아주 많이 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는 가뭄이 큰 문제여서 보현산 정상의 또 다른 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비가 많이 왔다. 오래전 기억이라 실제 상황과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관측자 입장에서는 천문대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게 아치에 맞는가 하는 생각에 봄이 되면 종종 떠오르는 기억이다. 가뭄이 끝날 즈음에 운 좋게 맞춰 지낸 기우제일 테지만 이상하게 그 이후 봄철의 천문대 관측일 수가 뚝 떨어졌다.
기우제와 명태 한 마리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1.8m 망원경의 반사경을 코팅하는 진공증착기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게 하나 있다. 1998년에 설치하면서 정상 작동을 기원하며 ‘명태’ 한 마리를 달아둔 것이다. 이젠 너무 오래돼 원래 있던 부품처럼 신경도 안 쓴다. 그 덕분인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기술이 포함된 장비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사용한 기록을 살펴보면 해마다 잔고장으로 끊임없이 수리했고, 또 장비를 개선해 왔기 때문이지 명백히 ‘그것’ 때문은 아니다. 그래도 그것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천문대 주변을 돌아다니면 돌탑이 참 많다. 호주나 칠레의 천문대에서는 이런 풍경을 보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돌이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돌탑이 놓인다. 우리만의 문화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어디나 좋은 소망을 갖는 사람의 마음은 같을 테니 외국 천문대에서 돌탑을 보기 어려운 것은 천문대를 찾는 사람의 수가 적은 이유도 있다. 보통의 외국 천문대는 오지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지만, 보현산천문대에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20년을 빼면 연간 4만 명 이상 다녀간다. 요즘도 날씨만 좋으면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 찬다. 참고로 2020년엔 6000명이 채 안 됐다.
소원을 비는 돌탑 배경의 은하수
어쨌든 돌탑을 쌓는 사람들 덕분에 돌이 많아 야간에 다니기 안 좋았던 곳이 깨끗하게 정리됐고, 멋진 돌탑은 밤하늘 천체를 담을 때 전경으로도 잘 어울린다. 은하수와 돌탑이 어우러지니 느낌이 좋다. 굳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유성에 소원을 빌 것도 없이 은하수의 무수히 많은 별에 소원을 담아 보자. 은하수뿐만 아니라 돌탑과 어우러진 해와 달, 그리고 밝은 행성들도 멋지다. 돌탑을 쌓은 사람의 마음마저 얻어서 소원을 빌어보기엔 그저 그만이다.4월 마지막 주부터 1.8m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 기간인데, 처음 5일은 구름과 비만 보았다. 그러다 하루 맑아서 밤을 꼬박 새우며 신나게 관측했는데, 기상 상황이 바뀌어서 또 구름이다. 비가 올 수도 있고, 이번 관측은 이미 실패다. 그래도 1년 후를 기대하며 조금이라도 더 관측하려고 날씨가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럴 땐 혹시라도 부정(?) 탈까 봐 안 좋은 날씨를 탓하거나 낮 동안의 좋은 하늘을 보고 밤을 기대하는 설레발을 치는 것도 자제한다.
그런데 요즘은 일기 예보가 좋아져서 그냥 기상청 구름 사진만 보면 관측 가능 여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속 기도가 별 의미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항상 하고 있다. 기대는 기대한 대로 이뤄지면 더 기분 좋은 것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 맑은 날 돌탑과 은하수에 소원을 빌어두는 건데, 지금은 흐려서 별이 안 보여 빌 수가 없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