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4일(현지시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경기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에서다. 제로 금리가 장기간 유지된 상황에서 매달 1200억달러씩 채권까지 매입해 자산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게 옐런 장관의 관측이다. 다만 증시가 크게 흔들리는 등 파문이 일자 그는 “금리 인상을 예측 또는 권고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속내 드러낸 전 Fed 의장

美경제수장, 금기 깨고 '금리정책' 언급…Fed '긴축시계' 빨라질 듯
옐런 장관은 하버드대 교수를 하던 1970년대 중후반부터 Fed와 인연을 맺었다.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총재, Fed 부의장을 거쳐 2014년부터 4년간 의장을 지냈다. 중앙은행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행정부가 금리 정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수십 년의 불문율을 깨고 기준금리 인상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팬데믹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대규모 지출과 통화 팽창 정책이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물가가 뛰고 자산 거품이 생기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재무장관이 금리 인상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최근 들어 미국 물가는 급등세다. 가장 최근 지표인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뛰었다. 2월 상승률은 1.7%였다. 재정적자도 늘고 있다.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작년 9월)에만 3조달러, 2021회계연도 상반기엔 1조7000억달러 발생했다. 각각 역대 최대 적자 폭이다. ‘돈 풀기’ 정책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공개된 3월 무역적자는 744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옐런 장관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2분기 성장률 10% 넘을 수도

올해 1분기 연율 기준 6.4%(전 분기 대비) 깜짝 회복했던 미 경제는 2분기엔 더 가파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3월 중순 시행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 효과가 본격화하고 있는 데다 경제 봉쇄 조치도 속속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대비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이날 기준 45%에 달했다.

Fed가 올해 미 성장률을 6.5%로 예상한 가운데 전문기관들은 2분기에 최고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애틀랜타연방은행이 작성하는 ‘현재 분기 예측 모델’(GDP나우)에 따르면 2분기 성장률은 13.6%로 전망됐다. 작년 3분기(33.4%)를 제외하면 1978년 후 가장 높은 수치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분기 성장률을 이보다 다소 낮은 10.5%로 예상했다.

전문가 표본을 대상으로 정기 조사를 하는 WSJ는 2분기에 연율 기준 8.1% 성장할 것으로 봤다. CNBC와 무디스의 공동 조사 결과는 9.3%였다. 이던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경제연구소장은 “팬데믹 이후 은행 계좌에 쌓인 미국인들의 초과 저축액만 3조5000억달러”라며 “봉쇄 해제와 함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놀라운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긴축 시작하면 신흥국 ‘타격’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서둘러 긴축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수차례 일축했지만 최근의 물가 급등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Fed 내에서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3개월 전보다 훨씬 커졌다”며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Fed는 내년에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공개한 점도표(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예상해 점으로 찍은 표)에선 18명의 위원 중 4명이 내년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Fed는 다음달 중순 올해 두 번째 점도표를 내놓는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도 지난 3일 “올해 성장률이 198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며 “물가도 (파월 예상과 달리) 올해 내내 2%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연내 테이퍼링에 나서면 ‘미 국채금리 상승→신흥국에서 자금 이탈→글로벌 금리 인상’ 도미노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뉴욕=조재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