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도 유채꽃 바다를 보며 세월의 뭇매 버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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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의 무대 흑산도를 가다
유배 간 정약전이 어류도감 집필한 곳
동백나무林 통과하는 12굽이길 지나
상라산 봉수대에 오르면 포구 한 눈에
푸른 땅끝 섬에서 오롯한 시간 '만끽'
유배 간 정약전이 어류도감 집필한 곳
동백나무林 통과하는 12굽이길 지나
상라산 봉수대에 오르면 포구 한 눈에
푸른 땅끝 섬에서 오롯한 시간 '만끽'
흑산도 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전남 목포까지 차를 타고 최소 4시간이나 달린 뒤 다시 배를 타고 2시간은 더 가야 섬에 닿습니다. 손암(巽庵) 정약전(1758~1816)의 유배지인 사리마을까지는 다시 차를 타고 12굽이길을 건너 30분 이상 들어가야 합니다. 그야말로 땅의 끝까지 간 느낌입니다. 고갯길을 넘는 순간 온 세상이 해무에 갇혔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19세기 한양에서 흑산도까지의 유배길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정이었을 겁니다. 고통 속에서 선생은 《자산어보》를 비롯한 여러 책을 썼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실상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정약전 선생.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흑산도로 함께 가보시죠.
오늘날 흑산도는 최고급 ‘홍어의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홍도의 명성에 가려 여행지로는 각광받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에 단체여행객들은 홍도를 구경하고 난 뒤 짬을 내서 흑산도에 들렀다. 관광객들은 섬 일주 관광버스를 타고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상라산성, 사촌서당, 최익현 유허비, 진리 처녀당 등을 둘러본 뒤 포구에서 홍어회에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급히 떠나갔다. 흑산도가 가진 매력에 주목한 이들은 별로 없었다.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예리 흑산터미널이 흑산도 여행의 출발지이자 일주도로의 시작점이다. 항구를 에두르며 읍동 12굽이길로 접어든다. 동백나무림을 통과하는 12굽이길은 어느덧 흑산의 상징이 됐다. 12굽이 급커브 길을 다 돌고 나면 상라대 전망대에 이른다. 근처에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어 벨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른쪽 가파르게 난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상라산 봉수대다. 이곳에 서면 12굽이길과 흑산도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흑산 최고의 전망대라고 할 만하다.
자산어보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흑산도 어부였던 덕순(德順) 장창대(張昌大)라는 사람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장창대를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고…성품이 차분하고 꼼꼼해 귀와 눈에 수용되는 모든 풀, 나무, 새, 물고기 등의 자연물을 모두 세밀하게 살펴보고 집중해서 깊이 생각해 이들의 성질과 이치를 파악한 사람”이라고 했다. 정약전은 장창대와 숙식을 함께하며 연구하고 궁리해 자산어보를 썼다. 자산어보에는 흑산도 인근에 사는 바다생물 227종의 이름과 특징, 습성, 쓰임새, 맛까지 기록해 놓았다. 참고할 만한 자료조차 구하기 어려운 유배지에서 오로지 치열한 관찰과 조사, 연구로 이뤄낸 성취였다. 이준익 감독의 흑백 영화 ‘자산어보’도 정약전과 장창대의 인연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작품이다.
흑산도가 정약전의 유배지지만 정작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도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도초도 발매마을에서 찍었다. 발매마을 언덕에는 정약전이 기거했던 흑산도 유배지를 본떠 만든 촬영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촬영장 초가에 앉으면 유채꽃 아래로 그림 같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초도는 ‘수국의 섬’으로 유명하다. 6월이 되면 화사한 수국이 온 섬을 뒤덮는다. 70년 넘은 팽나무 명품 숲길이 조성돼 있어 비대면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 Tip. 흑산도 홍어 꼭 맛보세요
흑산도 예리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홍어가 보인다. 홍어를 파는 식당과 위판장이 있고 포구에는 삭은 홍어 냄새가 진동한다. 홍어와 잘 익은 묵은지, 막걸리를 곁들여야 흑산도에 온 것이다. 싱싱하고 찰진 맛이 일품인 생홍어부터 삭힌 홍어까지 다양하다. 삭힌 걸 좋아하는 이들은 생홍어가 밍밍하다고 하지만 식감이 좋아서 생홍어만 찾는 이들도 많다.
흑산도·도초도(신안)=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12굽이길·봉수대…흑산도 매력의 재발견
“난 흑산에 유배 왔다. 흑산이란 이름은 검고 어두워서 두려움을 주었다.” 자산어보 서문에는 귀양을 떠나는 정약전의 심경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죽음을 간신히 면한 자들이 유배되는 곳. 섬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육지로 나가지 못하는 곳이 바로 흑산도였다. 유배를 당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정약전에게 흑산은 이름 그대로 자신의 미래처럼 검게 느껴졌을 것이다.오늘날 흑산도는 최고급 ‘홍어의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홍도의 명성에 가려 여행지로는 각광받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에 단체여행객들은 홍도를 구경하고 난 뒤 짬을 내서 흑산도에 들렀다. 관광객들은 섬 일주 관광버스를 타고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상라산성, 사촌서당, 최익현 유허비, 진리 처녀당 등을 둘러본 뒤 포구에서 홍어회에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급히 떠나갔다. 흑산도가 가진 매력에 주목한 이들은 별로 없었다.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예리 흑산터미널이 흑산도 여행의 출발지이자 일주도로의 시작점이다. 항구를 에두르며 읍동 12굽이길로 접어든다. 동백나무림을 통과하는 12굽이길은 어느덧 흑산의 상징이 됐다. 12굽이 급커브 길을 다 돌고 나면 상라대 전망대에 이른다. 근처에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어 벨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른쪽 가파르게 난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상라산 봉수대다. 이곳에 서면 12굽이길과 흑산도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흑산 최고의 전망대라고 할 만하다.
유배지에서 꽃피운 열정의 결실, 자산어보
자산어보의 흔적을 찾으려면 사리(沙里)마을로 가야 한다. 옛 이름은 모래미다. 정약전이 1806년부터 1814년까지 12년간 살았던 사리마을은 정겨운 돌담과 푸른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사리마을의 중심에는 사촌서당(복성재)이 있다. 유배 중에도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던 서당이자 조선시대 최고의 어류도감인 자산어보의 산실이다. 정약전은 신유사옥으로 흑산도에 유배됐다. 지식인으로서 서학(천주교)에 매료된 것이 화근이었다.자산어보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흑산도 어부였던 덕순(德順) 장창대(張昌大)라는 사람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장창대를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고…성품이 차분하고 꼼꼼해 귀와 눈에 수용되는 모든 풀, 나무, 새, 물고기 등의 자연물을 모두 세밀하게 살펴보고 집중해서 깊이 생각해 이들의 성질과 이치를 파악한 사람”이라고 했다. 정약전은 장창대와 숙식을 함께하며 연구하고 궁리해 자산어보를 썼다. 자산어보에는 흑산도 인근에 사는 바다생물 227종의 이름과 특징, 습성, 쓰임새, 맛까지 기록해 놓았다. 참고할 만한 자료조차 구하기 어려운 유배지에서 오로지 치열한 관찰과 조사, 연구로 이뤄낸 성취였다. 이준익 감독의 흑백 영화 ‘자산어보’도 정약전과 장창대의 인연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작품이다.
영화 실제 촬영지는 도초도 발매마을
사촌서당 부근에는 유배문화공원이 있다. 흑산도의 유배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곳이다. 조선시대까지 여기에 유배된 이들은 135명. 정약전을 비롯해 병자수호조약에 반대한 면암 최익현도 이곳으로 유배됐다. 돌담과 돌담 사이 골목길은 바다로 느리게 흘러든다. 유배문화공원 아래에서 정약전 동상이 포구를 내려다본다. 바다는 수면 아래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맑다.흑산도가 정약전의 유배지지만 정작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도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도초도 발매마을에서 찍었다. 발매마을 언덕에는 정약전이 기거했던 흑산도 유배지를 본떠 만든 촬영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촬영장 초가에 앉으면 유채꽃 아래로 그림 같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초도는 ‘수국의 섬’으로 유명하다. 6월이 되면 화사한 수국이 온 섬을 뒤덮는다. 70년 넘은 팽나무 명품 숲길이 조성돼 있어 비대면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 Tip. 흑산도 홍어 꼭 맛보세요
흑산도 예리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홍어가 보인다. 홍어를 파는 식당과 위판장이 있고 포구에는 삭은 홍어 냄새가 진동한다. 홍어와 잘 익은 묵은지, 막걸리를 곁들여야 흑산도에 온 것이다. 싱싱하고 찰진 맛이 일품인 생홍어부터 삭힌 홍어까지 다양하다. 삭힌 걸 좋아하는 이들은 생홍어가 밍밍하다고 하지만 식감이 좋아서 생홍어만 찾는 이들도 많다.
흑산도·도초도(신안)=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