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 사진=와이즐리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 사진=와이즐리
‘피날 때까지 아껴 쓰거나, 조악한 1회용 제품을 쓰거나’

전기 면도기가 아닌 ‘날 면도기’를 사용하는 남성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면도날 가격이 꽤 부담스럽기 때문에 보통의 소비자는 몇 번 사용했더라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무뎌진 면도날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와이즐리는 이런 남성들의 고민을 덜어주겠다고 나선 면도기 구독 서비스 기업이다. 사업 시작 3년만인 지난해 날 면도기 시장 점유율 9.3%를 달성했다. 젊은층 반응이 뜨거워 30대에선 13.2%를 기록했다.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는 “올해는 점유율 10%로 날 면도기 시장 3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을 장악해온 골리앗 같은 해외 브랜드를 상대로 스타트업이 다윗처럼 도전장을 던져 승기를 잡은 양상이다.

상황 1 남성 소비자들의 면도기 고민
도전 1 ‘진정성’으로 ‘공감’ 얻어 내

와이즐리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계기는 2018년 2월에 선보인 카드뉴스였다. 세련된 카피나 디자인이 아닌 투박한 콘텐츠였지만 순식간에 입소문이 퍼졌다. 단일 게시물로 ‘좋아요’ 5만 개, 댓글 2만9000건, 공유 2만3000회를 기록했다.

인기의 비결은 ‘진정성’이었다. 원가가 판매가의 5%도 안되는 면도날을 아껴 쓰려고 애써온 소비자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공감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매출이 목표치를 20배 이상 뛰어넘었고 2개월치 재고가 사흘 만에 바닥났다. 몰려든 접속자로 홈페이지가 하루에도 두, 세 번씩 장애를 겪었다.

지난해 4월 ‘와이즐리 2.0’이라는 2세대 면도기와 면도날을 출시했을 때도 진정성을 앞세웠다. 마케팅 예산은 대개 신규 고객들에게 집중된다. 재구매 고객은 ‘잡은 물고기’ 취급을 받을 때가 많다.

와이즐리는 달랐다. 2세대 면도기를 기존 고객에게 무료로 증정하며 이런 내용의 편지를 택배에 담아 보냈다.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습니다. 불합리한 면도기 시장을 바꾸려고 했고 함께 해준 많은 고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 이 제품을 함께 키워온 기존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선물합니다’

감동한 기존 고객들의 후기가 쏟아졌고 매출은 전달 대비 250% 성장했다.

상황 2 고객은 정기구매 원한다(?)
도전 2 고객의 ‘진짜 니즈’ 충족

그동안 국내에 면도용품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했다. 대부분은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생존하지 못하고 사라진 기업들도 많다.

이유가 뭘까. 구독경제가 인기를 모으는 상황을 감안해 정기구매 자체를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미국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이라는 성공 사례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와이즐리는 다르게 판단했다. 편의점과 H&B 스토어가 많은 한국 시장에선 미국과 달리 정기구매 자체가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면도날을 사기 위해 20분은 운전해야 하는 미국과는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정기구매 보다는 비싼 면도날 가격에 대한 불만을 해소해줄 대안이 고객의 니즈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대안으로 ‘D2C(Direct to Customer) 방식’을 선택했다. 유통단계를 줄이고 온라인몰에서 직접 판매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그렇게 고객 니즈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 니즈를 충족시키자 실적과 함께 ‘NPS(Net Promoter Score, 순추천지수)’가 뛰었다. 와이즐리는 NPS를 내부적으로 가장 중요한 KPI(핵심성과지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와이즐리는 면도기 시장에서 가장 높은 NPS를 달성했다.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는 “NPS가 높은 이유를 고객들에게 물어보면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는 브랜드라서 응원하고 함께 가고 싶다는 응답이 많다”고 전했다.

와이즐리, 고객의 ‘진짜 니즈’ 충족시키는 마케팅

상황 3 경쟁자는 고객의 구매 습관
도전 3 ‘현명한 소비’ 습관을 제안

와이즐리는 가장 큰 경쟁자를 다른 면도기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이 가진 과거의 습관으로 정했다.

김동욱 대표는 “고객들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며 면도날을 사거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최저가를 찾아 구매하는 습관이 있다”며 “이런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한 번 팔 수는 있지만 높은 재구매율을 유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와이즐리는 면도날이 비싸서 아껴 쓰거나 면도날 사는 것을 깜빡해서 오래된 면도날을 계속 쓰는 문제를 구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먼저 그런 제안이 필요한 사람을 디지털 마케팅을 통해 찾는다.

타깃이 정해지면 그들에게 알맞는 메시지와 프로모션을 제시한다. 김 대표는 “구독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집중한다”고 전했다. 구독에 대한 과거 부정적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음원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거의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요금이 결제되거나 집에 배달되는 우유가 휴가 다녀오는 동안 쌓인 경험이 그런 경우다.

구독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 결제 사흘 전 미리 알려주고 면도날이 아직 많을 경우 고객이 ‘이번 달은 건너뛰겠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로 간단하게 변경할 수 있게 했다.

와이즐리가 제안한 ‘현명한 소비’ 습관에 동의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 대표는 “와이즐리 고객의 재구매율이 93%”라며 “이는 80%대 후반인 달러 쉐이브 클럽 보다 높고, 세계 최고 수준인 넷플릭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와이즐리에선 ‘뉴욕타임스 테스트’가 매우 자연스럽다.
김동욱 대표는 “미국계 회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개념인데 내일 당장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에 우리 내부의 모든 의사결정이 공개되더라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더 많은 고객과 함께 더 멀리, 오래 성장하려면 ‘정직성’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가 큰 문제를 면도기에서 해결한 것처럼 D2C와 구독 서비스를 다른 생활소비재에도 적용해 세계적인 생활소비재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정직성을 지키며 고객의 진짜 니즈를 계속해서 충족시킨다면 그런 목표를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듯 하다.

장경영 선임기자 longrun@hankyung.com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구독경제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소유(Ownership)에서 사용(Usership)으로 변화하는 소비자의 최근 소비 행태를 반영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구독 서비스로 인해 소비자들은 편리한 제품 접근을 얻고, 공급자는 꾸준한 재구매 고객을 얻는다.

Telecoming에서 발표한 “Subscronomics Report 2021”은 영상 스트리밍, 비디오 게임, 의류, 애완견 사료, 보석 등을 포함하여 2021년 전 세계 모든 제품, 서비스에 걸쳐 약 20억 건 이상의 구독이 판매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는 2020년보다 31% 증가한 수치이며, 시장 규모로는 약 $228 billion에 달한다. 구독경제는 앞으로 2025년까지 연평균 23%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Fosker and Cheung(2021)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구독경제는 주로 (1)제품(ex. 음식, 뷰티 용품 등), (2)콘텐츠(ex. 영화, 음악 등), (3)서비스(ex. 배송, 피트니스 등)에 대해서 이루어지며, 영국 성인의 경우 약 71%가 서비스 구독, 62%가 콘텐츠 구독, 30%가 제품 구독을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기업 입장에서 구독경제의 목표는 매력적인 가치제안으로 신규 고객을 유치(acquisition)해 충분한 고객 기반을 마련하고, 고객과의 꾸준한 관계 형성을 통해 고객 유지율(retention)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케터는 변화하는 고객의 선호를 끊임없이 예측해야 하며, 지속적인 편리함을 제공해 고객 충성도를 높여야 한다.

와이즐리의 경우 구독경제의 핵심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다. 일단 면도기 구독에 매력을 느낄 타깃 고객을 선별해야 하는데, 와이즐리는 이 과정에서 가격할인이라는 단기적인 프로모션 보다 평소 고객이 가지고 있는 ‘진짜 니즈’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구독이라는 새로운 서비스에 저항감을 갖는 소비자를 위해 ‘구독 일시 중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심리적 저항 요인을 낮추었다. Fosker and Cheung(2021)의 연구에서도 제품 구독의 경우 서비스를 일시 정지할 수 있는 ‘pause or skip’ 기능이 매우 좋은 유인책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2세대 면도기를 기존 고객에게 무료로 선물한 이벤트는 구독 서비스의 핵심이 결국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여 새로운 추천을 유도하는 것임을 간파한 좋은 마케팅 전략이었다.

다만 제품(product) 구독의 경우, 서비스 구독, 콘텐츠 구독과 다르게 오랜 기간 구독을 유지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품 구독의 경우 상대적으로 대체 제품을 찾기가 매우 쉽고, 소비자 입장에서 특정 제품을 구독하는 순간 다른 브랜드 제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된다. 이는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콘텐츠의 경우 구독을 통해 오히려 더욱 다양한 선택이 보장되는 특징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따라서 제품 구독 마케터는 자사 구독 서비스의 독특함(uniqueness)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더 편리하고, 고객에게 더 적합한 맞춤형 제품을 찾아주는’ 구독 서비스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구독경제서비스는 크게 권한부여형, 추천형, 배송형 등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권한부여형은 서비스나 재화를 일정기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식이다.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추천형은 서비스나 재화의 선택과 구매·배송 또는 서비스의 수행을 전문가에게 추천받거나 위탁하는 방식이다. 품목과 제공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한 기업들이 존재한다. 배송형은 특정 주기마다 필요한 재화를 배송받는 방식이다. 와이즐리처럼 면도기를 정기 배송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구독경제서비스가 급성장하면서 같이 관심을 가지게 된 말이 ‘다크 넛지’(dark nudge)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의 ‘넛지’에 부정적 의미의 ‘다크’를 결합한 신조어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정도의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강압적인 방법에 비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데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러한 ‘넛지’에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된 ‘다크’를 결합한 ‘다크 넛지’는 공짜, 할인 등으로 소비자의 구매나 가입을 이끌어낸 뒤 ‘은근슬쩍’ 정상가격을 매기는 얄팍한 상술을 가리킨다. 그런 상술의 의도를 알았다면 구매나 가입을 할 소비자가 없을 것이란 점에서 소비자의 비합리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다크 넛지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점을 노린다. 그런 탓에 장기간, 사실상 자동적으로 반복 구매를 하는 ‘구독경제서비스’에서 다크 넛지가 소비자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한국소비자원에서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구독경제서비스에서의 다크 넛지 실태를 조사하여 다음의 네 가지 주요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즉 △음원사이트 등에서 할인행사 후 별도 고지없이 정상가로 자동결제가 이뤄지게 하는 것 △숙박예약 시 최초 검색 요금과 최종 결제 금액이 차이가 나게 만드는 것 △‘오늘 마감’ 등의 문구로 소비자들의 심리를 압박해서 구매를 촉진하는 것 △구독 해지 화면을 찾기 어렵게 만들어 해지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 등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3년간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다크 넛지 상담 건수는 77건이었으나 소비자피해 상담 시 용어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구독경제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이후 다크 넛지 사례는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구독경제서비스에서의 다크 넛지와 관련해서 와이즐리는 매우 주목할만한 사례다. 와이즐리는 소비자들이 과거 부정적 경험때문에 갖게 된 구독 서비스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집중했다. 와이즐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즉 불필요하게 많이 구매하지 않도록 결제 전에 알려주거나, 서비스 변경 및 해지를 카카오톡으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한 점 등은 구독경제서비스를 영위하는 사업자라면 모두가 본 받을 만한 마케팅전략이다. 다크 넛지와는 정반대의, 소비자 입장에 선 매우 모범적인 마케팅이다. 와이즐리가 앞으로도 정직성과 진정성에 기반한 마케팅으로 ‘정도 마케팅’의 표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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