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는 서희+이순신"이라더니…G7서 드러난 한·일 '공수전환'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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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외교장관회담, 美 대표단 숙소서 20분 진행
2년전 조국 "文정부, 서희와 이순신 역할 동시 수행"
韓, 바이든 취임 후 "협력" 강조
日, 대법원 판결 문제삼으며 '강공'
2년전 조국 "文정부, 서희와 이순신 역할 동시 수행"
韓, 바이든 취임 후 "협력" 강조
日, 대법원 판결 문제삼으며 '강공'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처음으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을 만났습니다.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것은 지난해 2월 이후 15개월 만입니다. 당연히 지난 2월 취임한 정 장관이 모테기 외무상과 직접 마주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한국 외교수장이 취임 세 달이 지나서야 일본의 카운터파트를 만났단 사실은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주변 4강 중 일본을 제외한 미·중·러 외교장관과 잇달아 가진 대면 회담들과 대비됩니다. 정 장관은 회담은 아니더라도 전세계 각국 외무장관과 통화를 해왔지만 모테기 외무상과는 통화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일본이 거절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악수도 하지 않는 사진에서도 드러나듯 두 외교수장의 어색한 만남은 냉랭해진 한·일 관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양국 장관은 첫 만남이었음에도 정식 회담이 아닌 ‘풀어사이드(약식 회담)’ 방식에 가까운 회담을 했습니다. 심지어 회담은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끝난 뒤 20여분간 미국 대표단의 숙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회담 성사는) 미국의 의향이 컸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라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외교 전문가들과 일부 언론들이 일제히 일본의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더라도 외교적인 ‘플랜B’는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조언은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으로 손쉽게 제압됩니다. 결국 일본은 이듬해 7월 기습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백색명단)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는 별개라고 밝혔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치졸한 ‘보복 조치’였습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내각은 대법원 판결로 인해 촉발된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을 이용해 이같은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국내에서는 이에 질세라 반일(反日) 감정이 거세지며 이른바 ‘노재팬’이라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됩니다. 서울 중구 등 일부 여당 소속 지자체들은 가로변에 태극기와 함께 노재팬 깃발을 내걸기도 합니다. 일본 차량과 일본 음식점 등을 겨냥한 공격 행위도 나타납니다. 정부·여당은 이를 오히려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돌연 자신의 SNS에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노래인 ‘죽창가’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조 전 수석은 죽창가로부터 일주일 뒤,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하여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글을 올립니다. 조 전 수석은 “일본 국력은 분명 한국보다 위”라면서도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 외교력 포함 현재 한국의 국력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이어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합니다. 외교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청와대 핵심 인사가 직접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촉발하는데 앞장선 것입니다. 이듬해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프레임까지 등장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조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일본을 향한 정부의 발언과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예방합니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를 예방하고 나온 뒤 기자들에게 “(스가) 총리에게 문 대통령의 간곡한 안부와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고, 대북 문제 등 좋은 의견을 들었고 저도 충분히 말씀 올렸다”고 말합니다.
이어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했다고도 밝힙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자며 선언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처럼 정상 간의 정치적인 해결을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박 원장 방일에 이어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 7명도 일본을 방문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온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지난 1월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고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습니다. 일본 정부 자산 압류까지 가능해진 상황에서 일본이 발칵 뒤집힙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혔고, 3·1절 기념사에서는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지만 일본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일본은 정부가 ‘일본통’이라며 강창일 전 의원을 주일 한국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강 대사는 2011년 러시아와 일본 간 영토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영유권 분쟁 지역을 제3국의 국회의원이 방문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당시 강 대사가 “러시아 영토”라고 말했다는 논란이 일본 내에서 불거졌습니다. 강 대사는 이 발언에 대해 해명하며 나루히토 일왕을 향해 ‘천황 폐하’라는 호칭까지 썼지만 아직까지 모테기 외무상과 스가 총리와 접견 한 번 갖지 못했습니다. 위안부 판결에 대해 한국이 일본 정부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불안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까지 나아갈 경우 단교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테기 외무상은 정 장관과의 짧은 첫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6일 “일본 사람들 보기에는 불안하다는 게 있다”며 “(압류 안 하는 것이) 정말 100프로 확실한거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일본 내부에서도 한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한·일 관계를 해결하려는 움직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교적 반일 성향이 강한 민주당 정권에서 관계를 잘 정립해야 ‘연속성’이 더 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차기 대선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유인은 극히 낮습니다. 문제는 한·일 관계가 단순히 양국 간의 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미·일 삼각공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절대적인 도덕성의 우위에 서있었습니다. 미국, 특히 미국 민주당의 핵심 인사들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내심 한국 편을 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의미조차 많이 퇴색됐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최근 일본은 물론 미국 조야에서조차 문재인 정부가 양국 정부 간 합의인데도 불구하고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 구축을 위한 양국의 약속”이라며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역사 관련 문제에 협력하도록 오랫동안 독려해 왔다”고 밝힙니다. 위안부 합의를 강조한 이 발언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무언의 압박을 넣은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며 문재인 정부의 가장 핵심 대외정책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까지 일본의 영향이 커졌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대북 정책 전반에 대해 한국 뿐 아니라 일본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대중(對中) 견제 노선까지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일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관건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까지 얽혀있는 이 문제를 풀 정부의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임기 마지막 해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이 여기서 판가름날 전망입니다.
송영찬 기자
한국 외교수장이 취임 세 달이 지나서야 일본의 카운터파트를 만났단 사실은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주변 4강 중 일본을 제외한 미·중·러 외교장관과 잇달아 가진 대면 회담들과 대비됩니다. 정 장관은 회담은 아니더라도 전세계 각국 외무장관과 통화를 해왔지만 모테기 외무상과는 통화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일본이 거절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악수도 하지 않는 사진에서도 드러나듯 두 외교수장의 어색한 만남은 냉랭해진 한·일 관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양국 장관은 첫 만남이었음에도 정식 회담이 아닌 ‘풀어사이드(약식 회담)’ 방식에 가까운 회담을 했습니다. 심지어 회담은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끝난 뒤 20여분간 미국 대표단의 숙소에서 진행됐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회담 성사는) 미국의 의향이 컸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라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죽창가' 외치던 정부·여당의 급반전
원래도 역사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었던 한·일 관계는 2019년 ‘파국’ 수준으로 치닫습니다. 한·일 갈등은 이른바 ‘사법 농단’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8년 7월 검찰의 관련 수사 중 사법부가 일본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고의로 지연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옵니다. 이 판결은 곧바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같은해 10월 피해자들의 승소로 끝이 납니다. 정부는 이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일본 관련 법원 판결이 나올 때마다 정부가 반복해서 내놓은 그 말입니다.대법원 판결 이후 외교 전문가들과 일부 언론들이 일제히 일본의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더라도 외교적인 ‘플랜B’는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조언은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으로 손쉽게 제압됩니다. 결국 일본은 이듬해 7월 기습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백색명단)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는 별개라고 밝혔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치졸한 ‘보복 조치’였습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내각은 대법원 판결로 인해 촉발된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을 이용해 이같은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국내에서는 이에 질세라 반일(反日) 감정이 거세지며 이른바 ‘노재팬’이라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됩니다. 서울 중구 등 일부 여당 소속 지자체들은 가로변에 태극기와 함께 노재팬 깃발을 내걸기도 합니다. 일본 차량과 일본 음식점 등을 겨냥한 공격 행위도 나타납니다. 정부·여당은 이를 오히려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돌연 자신의 SNS에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노래인 ‘죽창가’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조 전 수석은 죽창가로부터 일주일 뒤,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하여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글을 올립니다. 조 전 수석은 “일본 국력은 분명 한국보다 위”라면서도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 외교력 포함 현재 한국의 국력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이어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합니다. 외교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청와대 핵심 인사가 직접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촉발하는데 앞장선 것입니다. 이듬해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프레임까지 등장합니다.
韓美日 삼각공조에서도 '도덕성 우위' 퇴색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는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사실상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며 상황은 급변합니다. 동맹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으로 돌아가겠다는 방침을 명확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앞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막후에서 중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조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일본을 향한 정부의 발언과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예방합니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를 예방하고 나온 뒤 기자들에게 “(스가) 총리에게 문 대통령의 간곡한 안부와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고, 대북 문제 등 좋은 의견을 들었고 저도 충분히 말씀 올렸다”고 말합니다.
이어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했다고도 밝힙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자며 선언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처럼 정상 간의 정치적인 해결을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박 원장 방일에 이어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 7명도 일본을 방문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온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지난 1월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고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습니다. 일본 정부 자산 압류까지 가능해진 상황에서 일본이 발칵 뒤집힙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혔고, 3·1절 기념사에서는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지만 일본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일본은 정부가 ‘일본통’이라며 강창일 전 의원을 주일 한국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강 대사는 2011년 러시아와 일본 간 영토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영유권 분쟁 지역을 제3국의 국회의원이 방문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당시 강 대사가 “러시아 영토”라고 말했다는 논란이 일본 내에서 불거졌습니다. 강 대사는 이 발언에 대해 해명하며 나루히토 일왕을 향해 ‘천황 폐하’라는 호칭까지 썼지만 아직까지 모테기 외무상과 스가 총리와 접견 한 번 갖지 못했습니다. 위안부 판결에 대해 한국이 일본 정부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불안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까지 나아갈 경우 단교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테기 외무상은 정 장관과의 짧은 첫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6일 “일본 사람들 보기에는 불안하다는 게 있다”며 “(압류 안 하는 것이) 정말 100프로 확실한거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일본 내부에서도 한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한·일 관계를 해결하려는 움직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교적 반일 성향이 강한 민주당 정권에서 관계를 잘 정립해야 ‘연속성’이 더 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차기 대선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유인은 극히 낮습니다. 문제는 한·일 관계가 단순히 양국 간의 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미·일 삼각공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절대적인 도덕성의 우위에 서있었습니다. 미국, 특히 미국 민주당의 핵심 인사들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내심 한국 편을 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의미조차 많이 퇴색됐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최근 일본은 물론 미국 조야에서조차 문재인 정부가 양국 정부 간 합의인데도 불구하고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 구축을 위한 양국의 약속”이라며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역사 관련 문제에 협력하도록 오랫동안 독려해 왔다”고 밝힙니다. 위안부 합의를 강조한 이 발언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무언의 압박을 넣은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며 문재인 정부의 가장 핵심 대외정책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까지 일본의 영향이 커졌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대북 정책 전반에 대해 한국 뿐 아니라 일본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대중(對中) 견제 노선까지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일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관건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까지 얽혀있는 이 문제를 풀 정부의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임기 마지막 해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이 여기서 판가름날 전망입니다.
송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