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범 대표는 후임 인선 때까지 대표이사직 유지
"비대위, 소유·경영 분리 요청할 것"
지난 4일 홍원식 회장이 '불가리스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남양유업은 사내이사 4석 중 3석이 공석이 된 상태다. 같은 달 3일 이광범 대표이사 역시 불가리스 사태를 책임지겠다며 사내 메일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이사는 법적 절차에 따라 후임 경영인을 선정할 때까지만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방침이다.
홍 회장의 장남 홍진석 상무는 지난달 회삿돈 유용 등을 이유로 보직 해임된 상태다.홍 상무는 그동안 회사 비용으로 외제차를 임대,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아왔다. 앞서 홍 회장은 이달 4일 서울 논현동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 관련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온 국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시기에 당사에 분노하셨을 모든 국민들과 남양유업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회사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울먹였다. 이어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남양을 만들어 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 번 믿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란다"며 고개를 숙였다. 홍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직접 고개를 숙인 만큼 남양유업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2019년 외조카 황하니 씨의 마약 범죄 혐의 당시에도 홍 회장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홍 회장이 직접 공식석상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입장발표의 진정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홍 회장의 입장문에 홍 회장 본인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을 매각할지에 대해서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남양유업의 최대주주다. 코스피 상장사인 남양유업의 지분을 51.68% 보유하고 있다. 홍 회장의 아내인 이운경 씨(0.89%), 동생 홍명식 씨(0.45%), 손자 홍승의 씨(0.06%)의 지분까지 합치면 총수 일가의 지분은 53.08%에 달한다. 앞서 남양유업은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발표해 공분을 샀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코로나 시대의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자사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와 충남대 수의과 공중보건학 연구실이 공동 수행한 동물 세포실험 결과 불가리스에 있는 특정 유산균이 바이러스 활성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심포지엄 직후 남양유업 주가가 급등하고 일부 온라인쇼핑몰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품절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는 단기에 그쳤다. 해당 연구결과의 신뢰도가 낮다는 지적과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 및 고발 조치하며 분위기가 급반전된 것이다.
식약처는 남양유업의 발표가 순수 학술 목적이 아닌 자사 제품 홍보를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고 남양유업을 고발했다. 식품법 제8조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 또는 10년 이하 징역, 1억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남양유업 세종공장의 영업정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세종시는 남양유업 측에 세종공장의 2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 내용을 사전 통보한 상태다. 다만 이 처분이 확정되더라도 사측이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나설 수 있어 실제 공장 운영 중단 사태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종 행정처분은 오는 24일 청문회 이후 결정될 예정이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