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첫 전용 플랫폼 전기자동차 EV6의 사전예약을 받으면서 ‘작은 실험’을 시도했다. 온라인으로도 사전예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 차를 구매하려면 결국 직영 판매점이나 대리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큰 변화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소비자들의 판매점 방문 횟수를 한 번 줄여주는 ‘소소한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실험은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기아 판매노조가 회사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다. 노조는 “양산되는 차종을 판매하는 권한은 영업직군에만 주어져야 한다”며 “온라인 예약은 온라인 판매로 확대돼 영업직의 심각한 고용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3월 국내사업본부 사옥을 항의방문하고, 1인 시위를 하다가 반대집회까지 벌였다.

회사는 노조를 2주 가까이 설득해야 했다. 노조는 “인터넷 사전예약은 단순 일회성 이벤트”라는 내용이 포함된 노사 특별회의록을 작성한 뒤에야 회사 결정을 수용했다. 회의록에는 앞으로 인터넷 사전예약을 하려면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한 사전예약 결과도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전예약에 참여한 개인 고객의 54%가량이 온라인으로 신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많은 소비자가 번거롭게 매장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온라인 구매 예약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사실 온라인으로 자동차 구매를 예약하는 것을 대단한 ‘혁신’이라고 부를 순 없다. 오히려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에서는 진작부터 매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도 자동차를 살 수 있다. 차량 선택부터 결제까지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테슬라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온라인으로만 차량을 팔고 있다. 한국GM 등 완성차업체와 BMW 등 수입차업체들은 최근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막강한 힘을 쥔 영업직 노조가 있는 현대자동차·기아만 변화의 물결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당장 기아는 다음 신차를 출시할 때 온라인으로 사전예약을 받기 힘들어졌다. 노조의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도 온라인 사전예약을 결사적으로 막을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판매는 한동안 시도조차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마트폰으로 밤늦게 식품을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집 앞에 배송되는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호출하고, 차량 점검 픽업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국 ‘빅2’ 자동차 회사의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예약할 때조차 매장을 직접 찾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