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국내 첫 SLB 나온다…판 커지는 ESG 금융 [김은정의 기업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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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지속 가능 연계 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SLB)이 이르면 연내 나온다. 기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이 조달한 자금을 필수적으로 ESG 관련 프로젝트에 써야 한다면, SLB는 자금 소요처에 제한을 두지 않고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활동 성과를 채권 금리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마땅한 프로젝트를 찾지 못해 ESG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SLB가 ESG 채권의 대체재가 돼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 ESG 생태계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계열사인 한국신용평가는 내부적으로 SLB 평가방법론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아직 국내엔 SLB를 평가해 신용등급을 매길 수 있는 평가방법론이 마련돼 있지 않다. SLB에 부여할 수 있는 신용등급 평가방법론이 수립돼야 실제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를 모집해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다.
이미 일부 IB들도 SLB 구조에 관심을 갖고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발행 추진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석유화학·철강·석탄발전 등 ESG 관련 프로젝트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업종에 속해 있는 기업들로 전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ESG가 최대 경영 화두가 된 만큼 기업들도 앞다퉈 ESG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ESG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ESG 채권은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건축물, 친환경 교통 수단, 서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 공급, 소액금융 지원을 통한 고용 창출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ESG 대상 사업이 정해져 있다. ESG 대상에 맞는 프로젝트가 있어야만 ESG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몇 년 후엔 알맞은 프로젝트를 찾지 못해 ESG 채권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중견 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ESG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자본시장에서도 ESG 채권을 활용하면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주력 사업과 무관한 ESG 대상 프로젝트를 억지로 발굴할 순 없어 선뜻 ESG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SLB가 ESG 채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SLB는 자금 용도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ESG 채권에 비해 유연한 구조를 갖고 있다. 금리가 ESG 경영 성과와 연계된 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회사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초기 자금 조달 비용은 통상 일반 회사채에 비해 낮게 형성된다.
SLB는 기업과 투자자 간 협의에 따라 선정된 ESG 경영 목표를 충족하는 기간 동안엔 낮은 금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엔 높은 금리를 적용한다. 예컨대 특정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1년 후 현재보다 90% 수준으로 줄이고, 2년 후 80% 수준, 3년 후 70% 수준으로 줄이는 ESG 경영 목표를 설정한 뒤 목표를 달성하면 낮은 금리를 유지하거나 더 하향 조정하는 식으로 구조를 짜는 것이다. 반대로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통상 25bp 가량 금리가 오른다.
SLB 발행 때 활용되는 ESG 경영 성과 평가 기준은 에너지 효율이나 온실가스 배출, 대체 에너지 사용, 친환경 제품 사용 수준 등 자유롭고 다양하다. SLB를 활용하면 민간 석탄 발전사처럼 적합한 프로젝트를 찾지 못해 ESG 채권 발행이 쉽지 않은 기업들도 ESG 경영을 통해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ESG 대상에 적합한 프로젝트가 없더라도 매년 탄소 배출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단계적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로부터 상대적으로 싼 비용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관련 경영 목표를 세우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상태라 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걸 막으려면 경영 목표를 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유인도 생긴다. SLB가 ESG 경영의 스펙트럼을 넓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 유럽에선 SLB 발행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력 업체 에넬은 SLB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신재생 에너지 활용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ESG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수 차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 업체 노바티스나 아랍에미리트 항공 업체 에티하드항공, 인도 시멘트 업체 울트라테크 등도 SLB 발행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JP모건은 SLB 시장이 올해 원년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89억달러(한화로 약 9조9700억원)였던 전 세계 SLB 발행 규모가 올해 1500억달러로 치솟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IB 관계자는 “해외에는 ESG 경영 성과와 대출 금리를 연계하는 상품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이것이 채권으로 까지 확대되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금리 메리트를 기대할 수 있고, 기관투자가들도 ESG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라 ESG 경영 활동에 대한 성과 측정이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보장된다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이 기사는 05월12일(06:0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마땅한 프로젝트를 찾지 못해 ESG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SLB가 ESG 채권의 대체재가 돼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 ESG 생태계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계열사인 한국신용평가는 내부적으로 SLB 평가방법론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아직 국내엔 SLB를 평가해 신용등급을 매길 수 있는 평가방법론이 마련돼 있지 않다. SLB에 부여할 수 있는 신용등급 평가방법론이 수립돼야 실제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를 모집해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다.
이미 일부 IB들도 SLB 구조에 관심을 갖고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발행 추진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석유화학·철강·석탄발전 등 ESG 관련 프로젝트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업종에 속해 있는 기업들로 전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ESG가 최대 경영 화두가 된 만큼 기업들도 앞다퉈 ESG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ESG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ESG 채권은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건축물, 친환경 교통 수단, 서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 공급, 소액금융 지원을 통한 고용 창출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ESG 대상 사업이 정해져 있다. ESG 대상에 맞는 프로젝트가 있어야만 ESG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몇 년 후엔 알맞은 프로젝트를 찾지 못해 ESG 채권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중견 기업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ESG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자본시장에서도 ESG 채권을 활용하면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주력 사업과 무관한 ESG 대상 프로젝트를 억지로 발굴할 순 없어 선뜻 ESG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SLB가 ESG 채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SLB는 자금 용도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ESG 채권에 비해 유연한 구조를 갖고 있다. 금리가 ESG 경영 성과와 연계된 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회사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초기 자금 조달 비용은 통상 일반 회사채에 비해 낮게 형성된다.
SLB는 기업과 투자자 간 협의에 따라 선정된 ESG 경영 목표를 충족하는 기간 동안엔 낮은 금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엔 높은 금리를 적용한다. 예컨대 특정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1년 후 현재보다 90% 수준으로 줄이고, 2년 후 80% 수준, 3년 후 70% 수준으로 줄이는 ESG 경영 목표를 설정한 뒤 목표를 달성하면 낮은 금리를 유지하거나 더 하향 조정하는 식으로 구조를 짜는 것이다. 반대로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통상 25bp 가량 금리가 오른다.
SLB 발행 때 활용되는 ESG 경영 성과 평가 기준은 에너지 효율이나 온실가스 배출, 대체 에너지 사용, 친환경 제품 사용 수준 등 자유롭고 다양하다. SLB를 활용하면 민간 석탄 발전사처럼 적합한 프로젝트를 찾지 못해 ESG 채권 발행이 쉽지 않은 기업들도 ESG 경영을 통해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ESG 대상에 적합한 프로젝트가 없더라도 매년 탄소 배출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단계적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로부터 상대적으로 싼 비용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관련 경영 목표를 세우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상태라 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걸 막으려면 경영 목표를 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유인도 생긴다. SLB가 ESG 경영의 스펙트럼을 넓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 유럽에선 SLB 발행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력 업체 에넬은 SLB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신재생 에너지 활용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ESG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수 차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 업체 노바티스나 아랍에미리트 항공 업체 에티하드항공, 인도 시멘트 업체 울트라테크 등도 SLB 발행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JP모건은 SLB 시장이 올해 원년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89억달러(한화로 약 9조9700억원)였던 전 세계 SLB 발행 규모가 올해 1500억달러로 치솟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IB 관계자는 “해외에는 ESG 경영 성과와 대출 금리를 연계하는 상품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이것이 채권으로 까지 확대되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금리 메리트를 기대할 수 있고, 기관투자가들도 ESG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라 ESG 경영 활동에 대한 성과 측정이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보장된다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이 기사는 05월12일(06:0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