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핀테크는 금융회사 아닌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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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사이먼 《머니 해커》
"전자상거래서 인공지능에 블록체인까지
핀테크 토양 발전에 맞춰 규제도 바꿔야"
"전자상거래서 인공지능에 블록체인까지
핀테크 토양 발전에 맞춰 규제도 바꿔야"
요즘은 웬만하면 스마트폰에서 터치 몇 번으로 금융 업무가 끝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게 ‘핀테크’인지 뭔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모든 게 어차피 늘 해오던, 돈을 내거나 부쳐주는, 또는 빌리거나 투자하는 행동이다. 달라진 것은 없는데 너무도 달라졌다. 이 보이지 않는 혁명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금융컨설턴트이자 미국 금융박물관 회장인 대니얼 사이먼은 《머니 해커(The Money Hackers)》에서 최근 이 거대한 핀테크 혁신을 주도한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류는 이미 수천 년에 걸쳐 원시적 형태의 핀테크를 개발해 왔다. 금속화폐 주조법, 상거래 대출 및 추심기법,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제도, 신용카드 제도, 지폐 인쇄와 관리제도…. 이 고전적 핀테크를 보완하기 위해 시대별로 다양한 야금, 인쇄, 교통, 통신 기술이 활용되고 각종 제도와 규제가 개발됐을 뿐이다.
모든 역사는 축적이자 파괴다. 앞의 일들이 이뤄져야 뒤의 것들이 나온다. 동시에 앞의 것들은 서서히 파괴된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도처에서 싹을 틔운 핀테크의 토양을 다섯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전자상거래다. 1998년 페이팔이 그 바탕에서 설립됐고 2002년 이베이에 인수됐다. 1994년에 등장한 아마존은 1999년 원클릭 특허를 등록했다. 훗날 숱한 ‘OO페이’ 서비스들이 한결같이 이에 연원을 둔다.
둘째, 소셜미디어다. 금융회사를 통하지 않는 개인 간(P2P) 대출플랫폼 렌딩클럽이 2004년 페이스북 앱 형태로 등장했다. 2007년 크레딧카르마 등 신개념 신용등급 데이터 서비스 사업들도 모두 여기에 연원을 둔다.
셋째, 모바일 기기다. 2007년 7월, 아이폰 출시 후 얼마 안 지나 ‘탈옥폰’이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애플은 기존 폐쇄 앱 기조를 바꿔 외부개발자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아이폰에서 쇼핑하고 결제할 수 있는 벤모(Venmo) 서비스가 2009년 처음 등장했다. 이 회사는 브레인트리에 인수되고 다시 페이로 넘어갔다. 그밖에 피처폰 기반의 M-Pesa가 2008년 케냐에서 처음 등장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혁명이었다.
넷째, 인공지능이다. 베터먼트의 개인자산관리 로보어드바이저가 2010년 뉴욕 테크크런치디스럽트 콘퍼런스에 처음 소개돼 돌풍을 일으켰다. 그 이후 고객지향 혁신에 둔감했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이 앞다퉈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사상과 이념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바로 여기에서 탄생했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논문 최초 공개에 앞서, 1997년에 이미 탈중앙화와 개인정보 보호를 기치로 내건 ‘사이퍼펑크 선언(Cypherpunk Manifesto)’에서 원시적인 암호화폐 개념이 등장했다. 2010년 사토시는 온라인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오스트리아학파의 탈중앙 및 자유주의 경제사상에 심취해 있던 찰리 슈렘은 2011년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중개 플랫폼 비트인스턴트를 출범시켰다. 슈렘은 이내 거부가 됐고 암호화폐의 돈세탁 방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후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JP모간 출신의 정통 금융가 블라이스 마스터스는 블록체인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가 속한 디지털애셋은 2015년 호주 증권거래소 시스템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새로 구축함으로써 기존 정보기술(IT) 시스템의 고비용·저효율·복잡성 구조를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투기 대상으로 미운털이 박힌 암호화폐 대신 미래 기술로서 블록체인의 현실 적용 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20세기 여러 차례 대형 금융사고를 겪으면서 한없이 비대해진 누더기 유물과 같은 현행 금융규제는, 21세기형 데이터와 핀테크 환경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바뀔 때가 왔다. 기존 금융회사의 생존이나 내부효율 추구, 또는 그들에 대한 국가의 관리와 보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바깥세상에서 실제로 돈을 벌고 쓰고 빌리고 저축하고 투자하는 당사자들의 고통을 줄이고 편의성을 증대하는 게 유사 이래 지금까지 핀테크 본연의 목적이었음을 잊지 말자.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금융컨설턴트이자 미국 금융박물관 회장인 대니얼 사이먼은 《머니 해커(The Money Hackers)》에서 최근 이 거대한 핀테크 혁신을 주도한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류는 이미 수천 년에 걸쳐 원시적 형태의 핀테크를 개발해 왔다. 금속화폐 주조법, 상거래 대출 및 추심기법,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제도, 신용카드 제도, 지폐 인쇄와 관리제도…. 이 고전적 핀테크를 보완하기 위해 시대별로 다양한 야금, 인쇄, 교통, 통신 기술이 활용되고 각종 제도와 규제가 개발됐을 뿐이다.
모든 역사는 축적이자 파괴다. 앞의 일들이 이뤄져야 뒤의 것들이 나온다. 동시에 앞의 것들은 서서히 파괴된다. 이렇게 지난 20년간 도처에서 싹을 틔운 핀테크의 토양을 다섯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전자상거래다. 1998년 페이팔이 그 바탕에서 설립됐고 2002년 이베이에 인수됐다. 1994년에 등장한 아마존은 1999년 원클릭 특허를 등록했다. 훗날 숱한 ‘OO페이’ 서비스들이 한결같이 이에 연원을 둔다.
둘째, 소셜미디어다. 금융회사를 통하지 않는 개인 간(P2P) 대출플랫폼 렌딩클럽이 2004년 페이스북 앱 형태로 등장했다. 2007년 크레딧카르마 등 신개념 신용등급 데이터 서비스 사업들도 모두 여기에 연원을 둔다.
셋째, 모바일 기기다. 2007년 7월, 아이폰 출시 후 얼마 안 지나 ‘탈옥폰’이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애플은 기존 폐쇄 앱 기조를 바꿔 외부개발자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아이폰에서 쇼핑하고 결제할 수 있는 벤모(Venmo) 서비스가 2009년 처음 등장했다. 이 회사는 브레인트리에 인수되고 다시 페이로 넘어갔다. 그밖에 피처폰 기반의 M-Pesa가 2008년 케냐에서 처음 등장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혁명이었다.
넷째, 인공지능이다. 베터먼트의 개인자산관리 로보어드바이저가 2010년 뉴욕 테크크런치디스럽트 콘퍼런스에 처음 소개돼 돌풍을 일으켰다. 그 이후 고객지향 혁신에 둔감했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이 앞다퉈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사상과 이념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바로 여기에서 탄생했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논문 최초 공개에 앞서, 1997년에 이미 탈중앙화와 개인정보 보호를 기치로 내건 ‘사이퍼펑크 선언(Cypherpunk Manifesto)’에서 원시적인 암호화폐 개념이 등장했다. 2010년 사토시는 온라인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오스트리아학파의 탈중앙 및 자유주의 경제사상에 심취해 있던 찰리 슈렘은 2011년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중개 플랫폼 비트인스턴트를 출범시켰다. 슈렘은 이내 거부가 됐고 암호화폐의 돈세탁 방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후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JP모간 출신의 정통 금융가 블라이스 마스터스는 블록체인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가 속한 디지털애셋은 2015년 호주 증권거래소 시스템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새로 구축함으로써 기존 정보기술(IT) 시스템의 고비용·저효율·복잡성 구조를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투기 대상으로 미운털이 박힌 암호화폐 대신 미래 기술로서 블록체인의 현실 적용 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20세기 여러 차례 대형 금융사고를 겪으면서 한없이 비대해진 누더기 유물과 같은 현행 금융규제는, 21세기형 데이터와 핀테크 환경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바뀔 때가 왔다. 기존 금융회사의 생존이나 내부효율 추구, 또는 그들에 대한 국가의 관리와 보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바깥세상에서 실제로 돈을 벌고 쓰고 빌리고 저축하고 투자하는 당사자들의 고통을 줄이고 편의성을 증대하는 게 유사 이래 지금까지 핀테크 본연의 목적이었음을 잊지 말자.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