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으로 돈방석에 앉은 진단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 지난 4월 로슈가 젠마크를 인수한 데 이어 5월에는 디아소린이 루미넥스를, 홀로직이 모비디악을 각각 인수했다. 올해 1월 퍼킨엘머가 옥스퍼드 이뮤노텍을, 서모피셔가 메사바이오텍을 인수한 것을 포함하면 올해에만 코로나19 진단키트 관련 굵직한 M&A가 다섯 건 성사됐다.
루미넥스 품에 안은 디아소린
이탈리아의 진단기업 디아소린이 미국 진단기업 루미넥스를 18억 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주당 37달러로, 12% 프리미엄을 붙인 금액이다. 인수 절차는 올해 3분기 마무리된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기반을 두고 있는 루미넥스는 창업한 지 25년된 진단기업이다. 자체 세포 분석 장비는 물론 유전자, 단백질 진단기기, 시약 등을 판매하고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는 물론 다양한 감염성 질환 진단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코로나19와 독감,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을 한 번에 찾아내는 진단패널에 대해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디아소린은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이후 자산 가치가 가장 많이 상승한 기업 중 하나다. 유럽에 기반한 디아소린의 매출에서 미국과 캐나다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41% 정도다. 루미넥스는 분자진단 분야 매출의 90%를 미국에서 올리고 있다. 디아소린이 루미넥스를 품에 안으면서 북미 시장에서 입지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루미넥스는 병원용 감염병 진단 시스템 외에 의약품, 백신 개발에 활용하는 연구용 진단 기술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디아소린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다.

업계서는 디아소린이 병원 진단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루미넥스의 임상·연구부문 사업부를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앞서 홀로직도 핀란드 진단기업 모비디악을 7억9500만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모비디악도 루미넥스처럼 코로나19와 다른 감염병을 함께 진단할 수 있는 멀티 패널을 보유하고 있다.
방사성 의약품 강화 위해 DDR 도입한 노바티스
노바티스가 DNA손상반응(DDR) 관련 후보물질을 보유한 아티오스파마와 13억 달러 규모의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계약금은 2000만 달러다. 두 회사는 3년간 공동연구 등을 통해 최대 3개의 DDR 타깃을 발굴할 계획이다.

아티오스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기반을 둔 바이오 벤처다. DDR 경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DNA가 망가져 복제되면 다양한 질병이 생긴다. 암도 마찬가지다. 세포는 유전체가 망가지지 않고 잘 복제되도록 하기 위해 손상된 DNA를 찾고 이를 복구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갖췄다. 이를 DDR이라고 부른다.

DDR 과정을 약물 등으로 통제할 수 있으면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막거나 암세포에 대한 면역물질이 나오는 것을 촉진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MSD의 PARP저해제 ‘린파자’가 대표적인 DDR 치료제다.

아티오스는 린파자 개발사인 쿠도스 제약에서 근무한 니얼 마틴과 그레이엄 스미스가 각각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과학책임자(CSO)를 맡고 있다. 이들은 아스트라제네카가 2005년 쿠도스제약을 2억1000만 달러에 인수한 뒤에도 DDR 연구를 이어왔다. 아티오스는 지난해 12월 독일 머크와 3년 간 8개 DDR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내용의 8억60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맺었다.

노바티스는 공동연구를 통해 방사성 의약품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방사성 의약품은 표적물질을 찾아가는 리간드와 방사성동위 원소로 구성된다. 암세포 DNA를 망가뜨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다. 암세포가 망가진 DNA를 복구하지 못하도록 DDR을 조절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희비 갈린 PD-1·PD-L1 치료제
세계 1위 항암제 시장으로 꼽히는 PD-1·PD-L1 파이프라인 간 희비가 엇갈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항암제 자문위원회가 이들 항암제의 6개 적응증을 재평가하면서다.

FDA 자문위는 로슈의 티쎈트릭에 대한 삼중음성유방암과 방광암 적응증, MSD 키트루다의 방광암과 위암·간암 적응증, BMS 옵디보의 간암 적응증을 각각 재평가했다. 이들은 모두 FDA로부터 조건부 신속승인을 받았다. 의약품을 판매하면서 추가 데이터를 쌓아 재평가 받거나 데이터가 부족하면 적응증을 삭제해야 한다.

6개 중 2개는 통과하지 못했다. 키트루다의 위암 적응증은 8명 중 6명이, 옵디보의 간암 적응증은 9명 중 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FDA가 자문위 결정을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같은 결정을 해왔다.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사용 범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자문위가 키트루다의 위암 적응증을 삭제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옵디보 때문이다. 앞서 이달 중순 FDA는 옵디보를 위암 1차 치료제로 승인했다. 진행성·전이성 위암 1차 적응증을 받은 첫 면역관문억제제다. 위암 1차 치료제가 새롭게 승인받은 것은 10여 년 만이다. GSK는 FDA로부터 PD-1 차단제인 젬펄리를 자궁내막증 치료에 사용하도록 승인받았다. 이는 시판 허가를 받은 일 곱 번째 PD-1·PD-L1 계열 면역관문억제제다.
서모피셔, CRO업체 PPD 174억 달러에 인수
서모피셔가 세계적 임상연구기업 (CRO)인 PPD를 174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주당 47.5달러로, 24% 프리미엄을 얹은 금액이다. 올해 말 거래가 마무리된다. PPD는 47개 나라에 진출한 글로벌 CRO다. 직원은 2만6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은 47억 달러다.

이번 M&A를 통해 서모피셔는 CRO 시장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의약품 연구개발, 임상 지원 등 기존 사업 모델은 물론 의약품 개발 플랫폼, 임상 환자 모집 등의 새 사업영역을 추가해 신약 개발에 관한 종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IMS헬스와 퀸타일즈가 합병한 뒤 최근 몇년간 CRO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M&A 계약이 없었다. 잠잠했던 시장이 요동친 것은 올해 2월 시장 6위인 아이콘이 5위인 PRA헬스를 12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다. PRA는 일본 다케다제약의 임상을 전담해온 회사다. 두 회사 합병이 마무리되면 아이콘은 단숨에 글로벌 3위 CRO로 올라선다. PPD는 세계 4위 CRO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길리어드의 코로나19 치료제 렘데시비르 등의 임상시험 파트너였다.

실험실 장비 판매업체였던 서모피셔는 2017년 파테온을 72억 달러에 인수한 후 임상 서비스 제공 회사로 바뀌었다. 서모피셔는 지난해 여름 퀴아젠을 125억 달러에 인수하려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뒤 추가 M&A 대상을 물색해왔다. 서모피셔는 올해 1월 진단기업인 메사바이오텍과 바이러스벡터 회사인 헤노겐을 인수했다. 서모피셔가 4개월 간 발표한 M&A 계약 규모만 19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지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