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달라도 너무 다른 韓·英 '중대재해법'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맡은 바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지속과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우리 기업들의 현실을 나타내는 글귀가 아닌가 싶다.

이 중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법으로 손꼽힌다.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산업이 전문화·고도화되고 사회구조가 더욱 복잡해지는 현대사회 특성상 안전사고를 완전히 근절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평소 안전관리에 힘써 온 기업인마저 잠재적 범죄자라는 신분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한마디로 안전사고의 모든 책임을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묻는 법이다. 과실로 발생한 산재사고에 고의범에 준하는 형벌(1년 이상의 징역)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강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법률상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이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경영책임자가 누구이며,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처벌을 면하는지 법률 규정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계약 관계가 없고 지휘·감독도 할 수 없는 원청에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고 처벌하는 것도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2007년 제정)을 모델로 하고 있다. 영국은 무려 13년간의 토론과 심의 끝에 법이 제정됐다. 기업과실치사법은 법인 등 조직체의 관리운영에 중대한 위반이 있고, 이로 인해 사망을 유발한 경우 법인에 상한 없는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경영책임자 개인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고, 사망이 아닌 재해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중대재해의 책임을 직접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묻고, 징역형의 하한까지 설정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지금까지 영국에서 기업과실치사법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28건(연평균 2건 미만)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의 산재사망 건은 우리 산업안전보건법인 작업장보건안전법(1974년 제정)에 따라 처리된다. 법 제정 이후의 산재감소 효과도 거의 없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다.

법인 처벌에 중점을 둔 영국 사례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경영책임자 개인처벌로 확대 변질된 것이다. 영국이 산업안전보건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강력한 기업처벌법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1972년에 발표된 로벤스 보고서는 명령·통제기준의 산재예방 한계를 지적하고 사업장 자율안전관리 방식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보고서 결과를 반영한 것이 영국의 작업장보건안전법이고, 이 법의 시행으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업장 안전보건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온통 경영책임자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의 지원내용이 일부 규정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지원대책은 전무하다. 법률 자체가 워낙 모호하고 불명확해 시행령 제정으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률 시행 전 입법보완이 불가피하다. 외국보다 과도한 형사처벌 규정은 완화하고, 사전예방에 중점을 둔 법률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의 자율안전관리를 인증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처벌을 면해주는 규정 신설이 대안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충분한 검토 없이 제정돼 득보다 실이 많은 법이다. 실효적인 안전대책 없이 명분만을 앞세워 경영인을 과도하게 처벌하는 입법사례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 부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거나 사업을 접는 일이 없도록, 또 외국인 투자 유치와 고용창출을 위해서라도 합리적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