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항암제 타깃 발굴의 원동력이 되는 합성치사 원리
(Synthetic lethality as an engine for cancer drug target discovery)
저널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IF 64.80)게재일 2019.11.11
doi 10.1038/s41573-019-0046-z
암은 체세포의 유전체가 변형되어 생기는 질병이다. 2003년 휴먼 게놈 프로젝트 이후 발전한 개인 유전체 분석 기술로 수천 종류의 암에서 생기는 유전자 변화를 알아냈고, 이 정보의 도움으로 여러 종류의 암 특이적인 유전자와 표적항암제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정상세포와 암세포의 유전체를 분석하여 암세포에서 많이 나타나는 공통적인 유전적인 변형을 찾아서 새로운 항암제의 표적을 찾으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었다. 암에서 특이적인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표적항암치료는 몇 종류의 암에서 특정한 유전적 변형이 있는 일부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보통이고, 이것도 완벽한 치료 효과보다는 부분적인 치료 효과만을 보이는 것도 많았다. 또한 여러 종류의 표적항암치료제를 조합했을 때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굴된 ‘표적 유전자’의 상당수는 화합물이나 항체를 이용하여 기능을 억제하는 약물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돌연변이가 일어나 이전에 없던 활성을 가져 암을 일으키는 암 유전자(oncogene)는 유전자 산물인 단백질을 화합물이나 항체로 기능을 억제하여 암을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세포를 정상으로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돌연변이로 기능을 잃으면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한 유전자인 암 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는 약물이나 항체로 기능을 회복시키기는 어려웠으므로 직접적인 표적이 되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합성치사라는 개념은 새로운 항암제 표적을 찾는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합성치사는 원래 유전학 용어로, 어떤 유전자 두 개가 각각 기능을 잃은 상태에서는 개체나 세포는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지만, 두 개의 유전자가 동시에 기능을 잃게 되면 더 이상 세포가 생존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2001년 세포주기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릴런드 하트웰은 1997년 합성치사의 개념이 항암 치료제 발굴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종류의 암은 유전적인 불안정성에 기인하며, DNA 손상을 복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정상세포에서 암세포로 변한다. 그러나 DNA 손상을 복구하는 것은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세포에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복구 기전이 존재한다.
만약 DNA 복구 기능의 일부가 손상되면 돌연변이 확률이 조금 더 높아져 암세포가 형성될 확률이 높아지지만, 남아 있는 손상 복구 기능에 의해서 일단 암세포로 변한 세포가 생존을 위협 받을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다른 DNA 복구 기전마저 망가지면 암세포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고, 이 상태가 바로 합성치사가 된다. 합성치사는 이렇게 어떤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암세포의 추가적인 약점을 공격하여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암세포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전적인 결함과 쌍을 이루어 합성치사를 매개하는 유전자 타깃을 찾아내고 이것을 공격하는 것이 핵심이다.
합성치사의 개념이 항암제 개발에 최초로 적용된 예가 PARP(Poly ADP-ribose Polymerase) 저해제다. PARP는 DNA를 수리하는 기작 중의 하나인 단일 가닥 수리(single-strand break repair)에 관여한다. 세포 내에서 DNA가 손상될 때 수리하는 기작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유방암에서 많이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BRCA1/BRCA2 유전자에 의해서 수행되는 상동 재조합(homologous recombination)이다.
BRCA 유전자가 망가지면 돌연변이가 발생해서 암이 발생할 확률은 높아지지만, 단일 가닥 수선과 같은 다른 DNA 수선 기능이 있으므로 세포가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단일 가닥 수선에 관여하는 PARP가 추가적으로 망가지면 세포는 더 이상의 DNA 손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PARP저해제는 BRCA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에서 PARP의 기능을 억제하여 암세포를 죽이게 된다.
PARP 저해제로서 처음 등장한 혁신신약(first-in-class) 물질인 ‘올라파립’(상품명 린파자)은 2014년 BRCA 돌연변이를 가진 난소암 환자의 치료제로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며, 그 이후 BRCA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유방암과 췌장암 등으로 적응증의 범위를 넓혔다. 2019년 현재 린파자는 전 세계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어선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했다. PARP 저해제의 성공 이후 합성치사의 원리를 적용하여 새로운 항암제의 표적 유전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특히 리보핵산 간섭(RNAi)이나 크리스퍼와 같이 유전체 전체적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상실하도록 하는 실험 방법을 통하여, 특정한 돌연변이를 가진 암에서 합성치사를 유도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연구가 노바티스, 브로드연구소, 생거연구소 등에서 진행되었다.
PARP 이후에 합성치사 유전자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발굴되어 항암제 개발 단계에 들어간 대표적인 예로 MTAP(Methylthioadenosine Phosphorylase) 유전자와 PRMT5(Protein arginine Methyltransferase 5), MAT2A(Methione Adenosyl Transferase 2 Alpha)를 들 수 있다.
MTAP 유전자는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 합성에 관련된 유전자인데 이 유전자는 많은 종류의 암에서 손상되는 암 억제 유전자인 CDKN2A의 바로 옆에 존재해 CDKN2A가 삭제될 때 같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2016년 MTAP 유전자가 없어진 암세포에서 PRMT5 라는 유전자가 추가적으로 망가지면 세포가 죽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를 이용하여 MTAP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암을 죽이기 위하여 PRMT5의 발현을 억제하는 물질이 개발되었고, 이 물질은 현재 임상 연구를 통하여 실제 암 환자에 대한 치료효과가 있는지를 검증받고 있다.
합성치사의 원리는 새로운 항암제 표적 유전자를 규명하는 것 이외에도 이미 개발된 표적항암제가 왜 특정한 종류의 암에서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 가령 BRAF 억제제나 HER2 억제제는 각각 BRAF 돌연변이를 가진 흑색종이나 HER2가 증폭된 유방암 세포는 잘 죽이지만, 위암이나 직장암은 동일한 돌연변이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잘 죽이지 못한다.
암의 종류가 달라지면서 특정한 암에서는 하나의 유전자만을 건드리면 죽던 암세포가 복수의 유전자에 의존하는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암 종류에 따라서 합성치사 관계가 달라지는 경우, 이러한 암 종류 특이적 합성치사 유전자를 발굴하고 이를 억제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기존에 사용되던 항암제를 다른 약물과 같이 투여하여 치료가 되지 않던 암종을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표적 항암치료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 어떤 표적항암제를 오래 투여하다 보면 다른 유전자에서 변형이 발생하여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합성치사의 반대 상황인 합성구조(synthetic rescue)라고 부른다. 여기서 표적항암제에 대해서 내성을 가지게 하는 합성구조 관계인 유전자와 이를 억제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면, 표적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하고 항암제의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합성치사의 원리와 크리스퍼 등의 새로운 연구 기술의 발전은 그동안의 항암제 표적 발굴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PARP 저해제 이외에도 많은 신규 항암제가 합성치사 기반으로 개발될 것으로 생각된다.
암 전사체와 합성치사에 기반한 암 정밀치료
(Synthetic lethality-mediated precision oncology via the tumor transcriptome)
저널 Cell(IF 38.64)게재일 2021.04.13
doi 10.1016/j.cell.2021.03.030
모든 암 환자는 서로 다른 유전적인 변화를 가지고 있다. 물론 많은 암 환자에서 높은 빈도로 발생하는 유전적 변화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기에 기반하여 개발된 표적항암치료는 환자에 따라서 서로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며, 이를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효과적인 암 치료를 위해서는 개인의 암의 성격을 파악하고, 환자 개인의 암에 가장 잘 맞는 치료법을 찾는 ‘정밀 의료’ 혹은 ‘개인 맞춤 치료’가 필요하다.
유전체학과 오믹스 연구 기술의 발전 이후 암 환자의 암을 분석하여 맞춤형 치료를 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암 환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특정한 유전 변이와 여기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표적항암제를 찾는 것은 현재 일상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여기서 나아가 암 조직의 유전체나 전사체 수준에서 환자의 암 조직의 성격을 파악하여 최적의 치료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성균관대학교 의대의 이주상 교수 연구팀이 2021년 4월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암 전사체 분석에 의해서 특정한 환자에게 가장 잘 반응하는 최선의 표적항암제를 선택하는 암 정밀 치료를 위한 프레임워크인 ‘SELECT’가 제시되었다. SELECT는 합성치사와 합성구조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특정한 암 환자가 표적항암제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암 조직의 전사체 분석을 통하여 알아낸다.
우선 특정한 항암제와 합성치사 관계에 있는 유전자 조합을 알아내야 하는데, 많은 선행 연구에서 세포 수준의 크리스퍼·RNAi 스크리닝, 약물 민감성 테스트 등에 의해서 합성치사 및 합성구조 관계에 있는 많은 유전자 조합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포 수준의 연구에서 밝혀진 유전자 조합 중 극히 일부만 실제 암 환자에서 유의미했다는 것이 그동안의 문제였다. 따라서 이 중에서 실제로 암 환자에서 유의미한 것들만을 선별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암 환자에서 어떤 약물을 처리했을 때 유의미한 합성치사(혹은 합성구조) 관계를 보이는 유전자 쌍을 선별하기 위하여 암 환자에서 유래된 유전체-오믹스 데이터인 TCGA(The Cancer Genome Atlas)를 이용하였다. 일단 환자의 암세포에서 합성치사 관계에 있는 유전자 쌍이 동시에 불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좀 더 좋은 예후를 보이게 된다면, 이 유전자는 실제로 암 환자에서 합성치사의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실제로 합성치사의 관계를 보이는 유전자들은 대개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러 종류의 생물에서 진화 패턴이 비슷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적용하여 하나의 약물 표적에 대해서 가장 높은 합성치사 관계에 있는 유전자 25개를 선별하였다.
그 다음에는 해당 약물로 치료받은 TCGA 환자의 암 조직 전사체 데이터를 확인하여 합성치사 관련 유전자의 발현 정도와 항암제가 환자에게 잘 반응하는지의 관계를 분석한다. 만약 합성치사의 정도가 높으면(합성치사 관계의 유전자가 암 조직에서 발현되지 않는 경우) 환자의 암에 대한 예후는 더 좋을 것이며, 반대로 합성치사의 정도가 낮으면(합성치사 관련 유전자가 암 조직에서 많이 발현될수록) 해당 환자의 예후는 좋지 않을 것이다.
저자들은 이 분석방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BRAF 저해제로 치료받은 흑색종 환자를 분석해 보았다. 암 조직에서 합성치사 관련 유전자가 낮게 발현된 환자는 합성치사 관련 유전자가 높게 발현된 환자에 비해서 BRAF 저해제에 대해서 암세포가 더 잘 반응하였고, 생존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분석을 간암, 유방암, 다발성골수종, 대장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여러 가지 항암제로 치료받은 환자들에게 확장하였고, 이 결과 암 조직의 전사체 데이터로부터 얻은 합성치사의 정도(SL-Score)를 이용하여 특정한 항암제가 어떤 환자에게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약 80%의 정확도로 예측하게 되었다.
연구진은 표적항암제 이외에도 면역체크포인트 항암제인 PD-1과 CTLA-1의 효과 역시 동일한 방법론으로 예측하였다. 연구진은 PD-1 혹은 CTLA-1 유전자와 합성구조 관계, 즉 면역체크포인트 항암제로 PD-1을 저해한 상황에서 특정 유전자가 기능을 잃으면 세포의 생존이 올라가는 유전자들을 발굴하였고, 환자 암 조직의 전사체 분석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합성구조의 정도(SR-Score)에 따라서 PD-1 혹은 CTLA-1 저해제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암 조직의 전사체 분석에 의해서 특정한 환자의 표적항암제에 대한 반응을 약 80% 수준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된 셈이다.
물론 이 연구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는데, 이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표적 유전자 기반으로 합성치사 관계를 찾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표적항암제가 아닌 세포독성 항암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잘 예측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재의 결과는 이미 수행되어 결과가 나온 임상시험 결과를 후향적으로 분석하여 얻어진 것으로, 아직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의 암 환자 조직의 전사체 분석이 과연 특정한 항암제에 대한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암 조직의 전사체 분석을 통해 최적의 반응을 낼 수 있는 항암제를 예측하고, 이를 임상시험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궁석 SLMS 대표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 후연구원을 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충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은 Secret Lab of Mad Scientist(SLMS)라는 이름으로 과학 저술 및 과학 관련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암 정복 연대기>의 저자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