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산업찾기] AZ 백신 혈전 논란, EDTA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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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 유럽의약품청(EMA)이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19 백신이 혈전증과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뒤이어 13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얀센(존슨앤드존슨)의 코로나19 백신 역시 혈전증 유발로 인해 일시적으로 중단할 것을 권고했죠(23일 FDA는 백신 사용을 다시금 허가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두 백신의 유사한 부작용의 원인을 밝히고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중 한 결과가 20일 <리서치 스퀘어>에 공개됐습니다.
‘인간 유래 단백질, EDTA’AZ 백신 부작용의 주범?
‘백신으로 인한 면역 혈전성 혈소판감소증(VITT)’을 일으키는 두 백신의 공통점은 모두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혈전 발생의 주범으로 아데노바이러스가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얀센에서 발생하는 VITT 의심 환자(약 100만 명당 1명)보다 AZ에서 발생하는 의심 환자의 수(약 10만 명당 1명)가 10배가량 많고, 아데노바이러스를 사용하는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중국 칸시노 바이오로직스의 백신에서는 아직 혈전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캐나다 공동 연구진이 이런 의문을 풀어줄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혈액 응고 관련 전문가인 안드레아스 그리너처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대 교수팀은 AZ 백신의 혈전이 두 가지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AZ 백신에는 다른 백신에 비해 인간 유래의 단백질과 EDTA(Ethylene Diamine Tetra Acetic acid)가 유독 많았습니다(연구진은 인간 유래의 단백질은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데 사용된 인간 세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EDTA는 백신의 안정화제로 주로 쓰이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혈관의 누수를 유발하는데요, 연구진이 AZ 백신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EDTA의 양은 100마이크로몰(μM) 정도로 “일반 백신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EDTA로 인해 혈관의 누수가 발생하면 혈액 속에 있던 혈소판과 백신에 포함된 인간 유래 단백질이 엉겨 붙게 됩니다. 특히 혈소판이 내뿜는 ‘PF4’라는 단백질은 강한 양전하를 띠고 있어 인간 유래의 단백질을 포함해 백신을 구성하는 여러 물질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렇게 생긴 PF4 복합체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게 되는데요, 이때 다량의 PF4 항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항체들은 혈소판을 과도하게 활성화시키고, 결국 혈소판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보통 혈액을 응고시키는 혈소판이 줄어들면 출혈의 위험이 커지지만,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혈소판이 감소하면 되레 뇌, 복부, 폐 등에 치명적인 혈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연구팀이 여러 종류의 백신에 PF4를 추가해 관찰한 결과 PF4를 중심으로 거대한 복합체가 형성됐습니다.
AZ가 아닌 백신에도 인간 유래 단백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PF4 복합체를 만들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백신에 포함된 인간 단백질은 1㎖당 5마이크로그램(μg) 수준인 반면 AZ 백신은 16배에 달하는 70~80μg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만큼 AZ 백신에서 PF4 복합체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죠.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진 질병이 ‘헤파린 유도 혈소판 감소증’입니다. 헤파린은 혈액의 응고를 막는 물질로, 협심증과 같이 혈전에 의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에게서는 헤파린이 PF4와 결합하며 혈소판을 감소시키는 아니러니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잠자는 용을 깨우는 것과 같다”며 “(AZ) 백신이 동굴에 들어가 잠든 용에게 돌은 던진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갑론을박 한창
이번에 발표된 가설에 대해 아스트라제네카의 외부 컨설턴트인 고타미 아레팔리(Gowthami Arepally) 미국 듀크대 교수는 “흥미롭지만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대변인 역시 “아직 피어 리뷰를 거치지 않은 논문”이라며 “이런 드문 케이스들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과 역학 조사 연구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습니다(논문이 발표된 <리서치 스퀘어>는 정식 출판 전 논문을 공개하는 사이트입니다).
“코로나19 백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 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이지만,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백신 연구자인 폴 오피트 미국 필라델피아대 교수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EDTA가 VITT를 일으킨 시발점이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비슷한 부작용이 나타난 얀센의 백신에는 EDTA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모티머 펀치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 소아혈액학 전문의 역시 “아데노바이러스 자체가 염증성 자극 바이러스로 악명이 높다”며 “EDTA보다는 바이러스 쪽에 무게를 두는 편이 맞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현재 한국은 30세 이상, 영국은 40세 이상에게만 AZ 백신을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60세, 스웨덴과 핀란드는 65세 등으로 좀 더 강한 제한을 두고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AZ 백신이 다른 백신들이 개발되거나 수급이 안정될 때까지 사용되는 '1년짜리' 백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정확한 원인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백신으로 인한 면역 혈전성 혈소판감소증(VITT)’을 일으키는 두 백신의 공통점은 모두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혈전 발생의 주범으로 아데노바이러스가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얀센에서 발생하는 VITT 의심 환자(약 100만 명당 1명)보다 AZ에서 발생하는 의심 환자의 수(약 10만 명당 1명)가 10배가량 많고, 아데노바이러스를 사용하는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중국 칸시노 바이오로직스의 백신에서는 아직 혈전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독일과 캐나다 공동 연구진이 이런 의문을 풀어줄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혈액 응고 관련 전문가인 안드레아스 그리너처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대 교수팀은 AZ 백신의 혈전이 두 가지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AZ 백신에는 다른 백신에 비해 인간 유래의 단백질과 EDTA(Ethylene Diamine Tetra Acetic acid)가 유독 많았습니다(연구진은 인간 유래의 단백질은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데 사용된 인간 세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EDTA는 백신의 안정화제로 주로 쓰이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혈관의 누수를 유발하는데요, 연구진이 AZ 백신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EDTA의 양은 100마이크로몰(μM) 정도로 “일반 백신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EDTA로 인해 혈관의 누수가 발생하면 혈액 속에 있던 혈소판과 백신에 포함된 인간 유래 단백질이 엉겨 붙게 됩니다. 특히 혈소판이 내뿜는 ‘PF4’라는 단백질은 강한 양전하를 띠고 있어 인간 유래의 단백질을 포함해 백신을 구성하는 여러 물질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렇게 생긴 PF4 복합체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게 되는데요, 이때 다량의 PF4 항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항체들은 혈소판을 과도하게 활성화시키고, 결국 혈소판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보통 혈액을 응고시키는 혈소판이 줄어들면 출혈의 위험이 커지지만,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혈소판이 감소하면 되레 뇌, 복부, 폐 등에 치명적인 혈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연구팀이 여러 종류의 백신에 PF4를 추가해 관찰한 결과 PF4를 중심으로 거대한 복합체가 형성됐습니다.
AZ가 아닌 백신에도 인간 유래 단백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PF4 복합체를 만들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백신에 포함된 인간 단백질은 1㎖당 5마이크로그램(μg) 수준인 반면 AZ 백신은 16배에 달하는 70~80μg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만큼 AZ 백신에서 PF4 복합체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죠.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진 질병이 ‘헤파린 유도 혈소판 감소증’입니다. 헤파린은 혈액의 응고를 막는 물질로, 협심증과 같이 혈전에 의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에게서는 헤파린이 PF4와 결합하며 혈소판을 감소시키는 아니러니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잠자는 용을 깨우는 것과 같다”며 “(AZ) 백신이 동굴에 들어가 잠든 용에게 돌은 던진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갑론을박 한창
이번에 발표된 가설에 대해 아스트라제네카의 외부 컨설턴트인 고타미 아레팔리(Gowthami Arepally) 미국 듀크대 교수는 “흥미롭지만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대변인 역시 “아직 피어 리뷰를 거치지 않은 논문”이라며 “이런 드문 케이스들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과 역학 조사 연구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습니다(논문이 발표된 <리서치 스퀘어>는 정식 출판 전 논문을 공개하는 사이트입니다).
“코로나19 백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 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이지만,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백신 연구자인 폴 오피트 미국 필라델피아대 교수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EDTA가 VITT를 일으킨 시발점이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비슷한 부작용이 나타난 얀센의 백신에는 EDTA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모티머 펀치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 소아혈액학 전문의 역시 “아데노바이러스 자체가 염증성 자극 바이러스로 악명이 높다”며 “EDTA보다는 바이러스 쪽에 무게를 두는 편이 맞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현재 한국은 30세 이상, 영국은 40세 이상에게만 AZ 백신을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60세, 스웨덴과 핀란드는 65세 등으로 좀 더 강한 제한을 두고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AZ 백신이 다른 백신들이 개발되거나 수급이 안정될 때까지 사용되는 '1년짜리' 백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정확한 원인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