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진국 중 상당수가 근로자 연금에 대해 디폴트옵션을 시행하고 있지만 나라별 운영 방식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 호주 등에선 디폴트옵션에 실적배당형 상품만 두고 있지만 일본에선 원리금보장형까지 포함돼 있는 것. 나라별 도입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되 한국 퇴직연금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한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스웨덴 이스라엘 등에서는 근로자 연금이 디폴트옵션을 통해 생애 주기별로 주식 등 위험자산 편입 비중이 달라지는 ‘타깃데이트펀드(TDF)’나 주식 채권 등 포트폴리오를 갖춘 ‘밸런스드펀드’ 위주로 운용된다. 대표적으로 호주는 1992년 강제 퇴직연금을 도입하면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도 1981년 ‘401K’로 불리는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비슷한 취지의 디폴트옵션을 넣었다. 두 나라는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형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운용 상품 가운데 실적배당형 비중이 크다. 이 때문에 수익률도 연 7~9% 수준(2013~2019년)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2018년 1월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실적배당형뿐만 아니라 원리금보장형도 추가했다.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로 진입하는 등 초저금리 상황에서도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은 디폴트옵션 도입 첫해 76.3%를 기록하면서 전년보다 5.6%포인트 늘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런 탓에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선택지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금리 기조를 감안할 때 적극적인 운용으로 장기 수익률을 높여 실질적인 노후 대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미국 호주 등 모델이 한국의 실정과 맞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401K나 호주 슈퍼애뉴에이션과 같은 펀드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퇴직연금보다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가 이뤄지는) 국민연금과 더 가깝다”면서 “국내에서 퇴직연금은 미지급 급여의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에 근로자 선택권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디폴트옵션이 도입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리금보장형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향후 책임 공방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선진국에서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떨어지더라도 본인 선택에 따른 책임이라고 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이라며 “심지어 자신이 결정해놓고도 잘못되면 원리금을 모두 물어내라며 금융당국 앞에 가서 생떼를 쓰는 국내 풍토상 (디폴트옵션 도입이) 소송 등 분쟁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