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한 달에 두 건꼴로 새로운 법(제정법)을 만들어 냈다는 한경 분석보도(5월 19일자 A1, 4면)는 거대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의 입법 폭주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 잘 보여준다. 제정법은 개정법과 달리 기존에 없던 법을 만드는 것이어서 훨씬 더 폭넓은 의견 수렴과 꼼꼼한 심사가 필수다. 그런데도 지난 1년간 처리된 제정법들은 발의 후 평균 5개월 만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날림입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대 28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은 공청회가 열린 지 20일 만에 통과됐고, 중대재해처벌법은 발의한 지 7개월, 소위원회 상정 40일 만에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중대재해법 모델인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이 7년간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청회는 요식행위일 뿐이고, 국회법에 명시된 법제사법위원회 숙려기간(5일)도 건너뛰기 일쑤다. 이처럼 졸속 처리되다 보니 중대재해법은 통과되자마자 여당에서조차 개정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거대 여당에 편승한 정부부처들의 ‘청부 입법’도 늘고 있다. 부처 간 이견이 있어도 법 제정으로 이익을 보는 부처가 여당 의원을 부추겨 밀어붙이는 식이다. 입법 건수로 실적을 평가하니 의원들도 이런 청부입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처리된 의원입법은 2026건으로, 정부입법(145건)의 14배에 이른다.

국회는 의원입법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다. 지금처럼 여당이 압도적 다수일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정부입법은 규제 심사라도 받지만 의원입법은 그런 절차가 생략된다. 법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입법영향 평가조차 안 한다. 이렇다 보니 선심성 포퓰리즘 입법이나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들이 브레이크 없이 양산된다.

선진국에선 이런 식의 ‘불량입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미국 의회는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부실한 법안의 80%가 걸러지고, 나머지 20%만 집중적으로 심사해 법안 수준을 높인다. 프랑스는 국가의 세입을 줄이거나 지출을 늘리는 법률인 경우 정부가 발의하는 법만 가능하다.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인 입법권은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것이다. 의원들은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불량 입법’을 마구 찍어내는, 거대 여당의 폭주는 ‘입법권의 타락’일 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