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공화당의 위험한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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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트럼프당'으로 되돌아가
눈앞의 강성 지지층만 쳐다봐
'원칙없는 패배'로 이어질 수도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눈앞의 강성 지지층만 쳐다봐
'원칙없는 패배'로 이어질 수도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미국 공화당이 도로 ‘트럼프당’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1월 6일 ‘친트럼프’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거리를 뒀던 공화당이 다시 원위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12일 공화당 하원 서열 3위인 리즈 체니 의원을 지도부에서 축출한 사건이었다. 체니는 당시 공화당 하원 의원총회 의장을 맡고 있었다. 이 자리는 원내대표, 원내총무 다음 자리다. 그런데 공화당은 찬반토론도, 기명투표도 하지 않고 음성투표만으로 체니의 의장직을 박탈했다. 이어 이틀 뒤 그 자리에 ‘트럼프 충성파’로 불리는 엘리스 스터파닉 의원을 앉혔다.
체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딸로 정통 보수주의자로 꼽힌다. 트럼프의 정책이라도 감세, 규제 완화 등 전통적인 공화당 정책엔 찬성했다. 하지만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트럼프에 등을 돌렸고 민주당이 주도한 ‘2차 트럼프 탄핵’ 때 찬성표를 던졌다.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공화당에선 체니에 대한 신임 여부가 논란이 됐다. 지난 2월 1차 신임 투표가 실시됐다. 이때만 해도 공화당 내 기류는 체니에게 우호적이었다. 신임 투표 결과 체니의 의장직 사퇴 반대가 145표, 찬성이 61표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 돼 공화당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미 언론에선 “공화당이 보수주의보다 트럼프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더힐), “공화당은 어떤 정책 의제보다 트럼프 한 사람에 대한 추종만을 중요시하는 집단이 됐다”(뉴욕타임스)는 진단이 나왔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애덤 킨징어 공화당 하원의원은 공화당의 모습을 “마치 북한 같다”고 비판했다. 정책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한 사람에게만 충성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요즘 공화당 의원들의 입에선 트럼프를 옹호하다 보니 상식과 거리가 먼 발언들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앤드루 클라이드 공화당 하원의원은 의회 청문회에서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에 대해 “TV 화면을 보면 사람들이 정돈된 옷을 입고 비디오나 사진을 찍고 있다”며 “1월 6일에 찍힌 걸 몰랐다면 보통 의사당 투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폴 고사르 하원의원은 “법무부가 평화로운 애국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라며 친트럼프 시위대를 옹호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의사당 난입사태로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당시 친트럼프 시위대는 의사당 벽을 기어올랐고 창문을 부쉈다. 일부 시위대는 “펜스를 목매달아야 한다”고 외쳤다.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의사당에서 대선 결과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다 인근 군 부대로 대피해야 했다. 시위대를 막는 과정에서 여러 명의 경찰이 숨지고 100명 넘는 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도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런 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공화당이 트럼프와 손을 잡는 것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득표력이 필요하다는 정략적 계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화당 지지층 다수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대선 결과는 사기”라는 트럼프 주장에 동조한다. 트럼프 측이 제기한 수십 건의 대선 불복 소송은 법원에서 패하거나 기각당했고 보수 우위의 미 연방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지지층은 믿고 싶은 대로만 믿고, 공화당 지도부는 여기에 편승해 친트럼프 체제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이런 전략은 ‘원칙 없는 패배’로 이어지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편가르기 정치와 대선 불복에 염증을 느낀 대다수 중도층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과 올해 1월 5일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한 게 이를 방증한다. 당시 공화당 현직 상원의원 2명은 트럼프의 ‘대선 불복’ 주장을 방조하다 텃밭에서 민주당에 패했다. 그 결과 공화당은 백악관과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마저 주도권을 잃었다.
그런데도 공화당이 다시 ‘트럼프당’이 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당을 수술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강성 지지층만 쳐다보기 때문 아닐까.
hohoboy@hankyung.com
이 조사는 공화당이 리즈 체니 하원의원의 하원 의원총회 의장직을 박탈한 직후 이뤄졌다. 공화당원의 80%는 지도부에서 체니를 축출하는 데 동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80%가 “그렇다”고 했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은 20%뿐이었다. 공화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도층을 비롯해 전반적인 유권자 표심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야후뉴스가 11~13일 미국인 1554명에게 ‘오늘 2024년 대선이 치러진다면 누굴 찍겠느냐’고 물었을 때 48%가 바이든을, 36%가 트럼프를 찍겠다고 했다.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은 각각 바이든과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중도층은 46%가 바이든을, 35%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공화당이 중도층을 잡지 못하면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12일 공화당 하원 서열 3위인 리즈 체니 의원을 지도부에서 축출한 사건이었다. 체니는 당시 공화당 하원 의원총회 의장을 맡고 있었다. 이 자리는 원내대표, 원내총무 다음 자리다. 그런데 공화당은 찬반토론도, 기명투표도 하지 않고 음성투표만으로 체니의 의장직을 박탈했다. 이어 이틀 뒤 그 자리에 ‘트럼프 충성파’로 불리는 엘리스 스터파닉 의원을 앉혔다.
체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딸로 정통 보수주의자로 꼽힌다. 트럼프의 정책이라도 감세, 규제 완화 등 전통적인 공화당 정책엔 찬성했다. 하지만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트럼프에 등을 돌렸고 민주당이 주도한 ‘2차 트럼프 탄핵’ 때 찬성표를 던졌다.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공화당에선 체니에 대한 신임 여부가 논란이 됐다. 지난 2월 1차 신임 투표가 실시됐다. 이때만 해도 공화당 내 기류는 체니에게 우호적이었다. 신임 투표 결과 체니의 의장직 사퇴 반대가 145표, 찬성이 61표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 돼 공화당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미 언론에선 “공화당이 보수주의보다 트럼프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더힐), “공화당은 어떤 정책 의제보다 트럼프 한 사람에 대한 추종만을 중요시하는 집단이 됐다”(뉴욕타임스)는 진단이 나왔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애덤 킨징어 공화당 하원의원은 공화당의 모습을 “마치 북한 같다”고 비판했다. 정책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한 사람에게만 충성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요즘 공화당 의원들의 입에선 트럼프를 옹호하다 보니 상식과 거리가 먼 발언들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앤드루 클라이드 공화당 하원의원은 의회 청문회에서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에 대해 “TV 화면을 보면 사람들이 정돈된 옷을 입고 비디오나 사진을 찍고 있다”며 “1월 6일에 찍힌 걸 몰랐다면 보통 의사당 투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폴 고사르 하원의원은 “법무부가 평화로운 애국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라며 친트럼프 시위대를 옹호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의사당 난입사태로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당시 친트럼프 시위대는 의사당 벽을 기어올랐고 창문을 부쉈다. 일부 시위대는 “펜스를 목매달아야 한다”고 외쳤다.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의사당에서 대선 결과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다 인근 군 부대로 대피해야 했다. 시위대를 막는 과정에서 여러 명의 경찰이 숨지고 100명 넘는 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도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런 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공화당이 트럼프와 손을 잡는 것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득표력이 필요하다는 정략적 계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화당 지지층 다수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대선 결과는 사기”라는 트럼프 주장에 동조한다. 트럼프 측이 제기한 수십 건의 대선 불복 소송은 법원에서 패하거나 기각당했고 보수 우위의 미 연방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지지층은 믿고 싶은 대로만 믿고, 공화당 지도부는 여기에 편승해 친트럼프 체제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이런 전략은 ‘원칙 없는 패배’로 이어지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편가르기 정치와 대선 불복에 염증을 느낀 대다수 중도층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과 올해 1월 5일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한 게 이를 방증한다. 당시 공화당 현직 상원의원 2명은 트럼프의 ‘대선 불복’ 주장을 방조하다 텃밭에서 민주당에 패했다. 그 결과 공화당은 백악관과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마저 주도권을 잃었다.
그런데도 공화당이 다시 ‘트럼프당’이 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당을 수술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강성 지지층만 쳐다보기 때문 아닐까.
hohoboy@hankyung.com
공화당원, 여전히 대선 결과 불복
미국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공화당원의 67%는 여전히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가 지난 12~14일 공화당원 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조 바이든이 합법적 대선 승자냐’는 질문에 67%가 “아니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한 응답자는 33%에 그쳤다.이 조사는 공화당이 리즈 체니 하원의원의 하원 의원총회 의장직을 박탈한 직후 이뤄졌다. 공화당원의 80%는 지도부에서 체니를 축출하는 데 동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80%가 “그렇다”고 했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은 20%뿐이었다. 공화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도층을 비롯해 전반적인 유권자 표심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야후뉴스가 11~13일 미국인 1554명에게 ‘오늘 2024년 대선이 치러진다면 누굴 찍겠느냐’고 물었을 때 48%가 바이든을, 36%가 트럼프를 찍겠다고 했다.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은 각각 바이든과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중도층은 46%가 바이든을, 35%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공화당이 중도층을 잡지 못하면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