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쇠고기를 마블링과 광택, 살집에 따라 1~5 단계, 소 한마리에서 나오는 식용 가능한 고기의 양에 따라 A~C 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조합해 C1~A5까지 15단계로 분류한다. (자료 : 니혼게이자이신문)
일본은 쇠고기를 마블링과 광택, 살집에 따라 1~5 단계, 소 한마리에서 나오는 식용 가능한 고기의 양에 따라 A~C 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조합해 C1~A5까지 15단계로 분류한다. (자료 : 니혼게이자이신문)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와규(和牛·일본산 쇠고기)’ 가격이 최상급 등급을 중심으로 크게 떨어지고 있다. 축산농가가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만 바라보고 최고급 와규 생산에 집중하는 사이 일반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중상급 쇠고기 시장은 외국산에 내주고 있어 코로나19가 일본 축산시장의 왜곡된 현실을 노출시켰다는 분석이다.

21일 일본 농축산업진흥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도쿄시장에서 최고 등급인 'A5' 와규 1㎏당 평균 도매가격은 2502엔(약 2만6000원)이었다. 1년전보다 164엔(6%) 하락했다. 2800엔을 오가던 2016~2018년에 비해서는 도매가가 10% 이상 떨어졌다.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작년 4월 와규 도매가는 7년 반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음식점들이 일제 휴업에 들어가고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외식 수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A5 등급 와규 가운데서도 고급 부위의 가격하락이 두드러졌다. 스테이크 등에 사용되는 등심의 1㎏당 도매가격은 6291엔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하락했다. 야키니쿠 전문점과 외식 체인점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깨살은 3226엔으로 10% 떨어졌다.

대형 호텔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투숙객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끊기면서 스테이크 용으로 제공하던 와규 구입량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쇠고기의 마블링과 광택, 살집에 따라 1~5 단계, 소 한마리에서 나오는 식용 가능한 고기의 양에 따라 A~C 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조합해 C1~A5까지 15단계로 분류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최고 등급인 A5 가격은 2000엔을 밑돌았다. 일본 정부의 외국인관광객 유치 정책에 따라 일본을 찾는 해외 여행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A5 가격이 급등했다. 일본 관광 기념으로 서리가 내린 것처럼 촘촘하게 지방이 박힌 최고급 와규(상강육)를 즐기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고급 와규 가격의 급락은 단순히 수요 감소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지나치게 높아진 외국인 관광객 의존도와 이에 따른 공급 구조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식육등급협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와규 시장에서 A5 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49.5%로 10년 전의 17.5%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축산농가가 너도나도 인기가 높은 A5 등급만 생산한 결과 최고 등급 와규가 가장 흔한 쇠고기가 돼 버린 것이다.

반면 와규 특유의 맛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블링이 상대적으로 덜해 슈퍼마켓이나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선호하는 A3 등급은 10년전의 26.2%에서 10.0%로 곤두박질쳤다.

공급구조가 뒤바뀌자 가격 체계도 흔들렸다. 2000년 905엔이었던 A5 등급과 A3 등급의 도매가격 차이는 지난해 507엔까지 좁혀졌다. 흔해진 A5 가격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귀해진 A3 가격이 오른 탓이다.

일본 축산농가가 외국인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와규 고급화에 여념이 없는 동안 정작 안방은 마블링도 적당하고 값도 합리적인 수입 쇠고기가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작년 3월 펴낸 '낙농 및 식용 쇠고기 생산의 근대화를 위한 기본방침'에 따르면 "최근들어 증가하는 일본인의 쇠고기 소비를 대부분 수입 쇠고기가 충족시키고 있다"며 "일반 소비자들은 마블링과 가격이 적당한 쇠고기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수가 회복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와규시장도 절약 의식이 강한 일본인의 취향에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와규의 도매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소득이 늘지 않은 일본인에게는 여전히 고급품"이라며 "일반인은 사먹기 힘들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