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정책이 싱가포르 합의에 기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새 대북 정책의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강조한 한·미 양국 정부를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한반도의 위협은 한국이나 주한미군이 아닌 북핵이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0일(현지시간)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 합의는 어떤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굳이 싱가포르 합의의 의미를 찾자면 미국이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 연설에서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유연하고 점진적·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지난 18일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노력은 이전 정부에서 마련된 싱가포르 및 다른 합의 위에 구축될 것”이라며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강조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북한과의 대화에 임하겠다는 양국 정부를 동시에 겨냥했다. 그는 회담에 배석했으면서 싱가포르 합의를 반대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엔 “당시 협상장에서 미국은 어떤 것을 동의하고 어떤 것을 동의하지 않을지를 두고 많은 토론을 했다”며 “큰 실수 없이 싱가포르를 빠져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성과를 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등과 함께 확대 회담에 배석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큰 실수’라 평가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묘사하든 ‘행동 대 행동’ 원칙이 핵심”이라며 “북한의 행동에 따라 대북 제재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것은 북한만 유리하게 하기 때문에 이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은 큰 실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비핵화에 대한 자신들의 약속이나 의무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무시해왔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도 드러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위협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고 이것이 제거돼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한국이나 주한미군이 국제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한반도 비핵화 개념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위협은 북한이고 이것이 해결돼야 한다”며 북한 비핵화라고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는 22일 새벽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번 회담은 기본적으로 양국 정상이 여러 현안에 대한 견해를 교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두 정상은 북한 문제 외에 의논해야 할 현안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조속한 협상을 남북한 통일과 연결지으며 압박할 것 같다”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경제 회복 등 국내 문제를 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권위주의 정권에 외부정보를 유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며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도 우회 비판했다. 그는 “탈북민 등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에서는 북한 주민들 뿐 아니라 정부 관리들도 외부 정보를 듣고 있다”며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권위주의 정부를 버리고 자유 민주국가인 한국과 재통일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공통된 대북 접근법을 지녀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 같은 입장이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이 이를 악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