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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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 해도 팔라고 해도 다 못 믿겠다고 하네요", "10년 전과 비교하면 하우스(리서치센터) 규모가 정말 많이 줄었죠. 예전에는 모셔가기 바빴다면, 이제는 욕먹기 바쁩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증권사들의 '브레인'이자 '꽃'으로 불렸던 애널리스트들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기업들을 분석해 기관이나 펀드매니저 등 바이(buy) 사이드를 설득하면서 위세를 떨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거에는 주가가 떨어져도 '매수' 리포트만 양산해 비난을 받았다면, 이제는 하락위험성을 알리는 '매도' 리포트를 내도 "공매도 세력을 두둔한다"고 눈총을 받고 있다. 어떤 분석을 내놔도 이제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큰손으로 떠오른 시기와도 궤를 같이 한다. 애널리스트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로 보기보다는, 기관들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세력으로까지 낮춰 평가하기도 한다. 증권사 내에서는 '좋은 소리도 못 듣는데 처우도 예전만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연차가 차면 리서치센터를 떠나는 애널리스트들이 속출하고 있다.

"예전만 못하다"…리서치센터 떠나는 애널리스트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기준 증권사 애널리스트(금융분석사) 인력 규모는 1057명이다. 작년 말 기준 1049명 대비 8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보통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 애널리스트 수는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올해 들어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넘어서고 고점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애널리스트의 규모는 늘지 않았다.

특히 10여년 전인 2010년 국내 애널리스트 수는 1508명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가량이 줄었다.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와 상장기업수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체감되는 감소폭은 더 크다. 애널리스트가 되려면 수련의와도 같은 RA(리서치 어시스턴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젊은 MZ세대들의 지원이 예전만 못한 이유도 있다.

양(量)만큼 주목해야 할 건 질(質)이다. 이른바 '잘 나가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은 앞다퉈 자리를 떠나고 있다. 높은 성과급과 빠른 승진으로 '센터장' 자리를 노렸던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한 스타 애널리스트는 국내 5대그룹 중 한 곳의 부설 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작년과 올해 초 두 명의 제약·바이오 분야 애널리스트는 각각 바이오벤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이직하기도 했다. 부동산 분야의 스타 애널리스트들도 퇴사를 해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몰려 있는 여의도 증권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증권사들이 몰려 있는 여의도 증권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업계 안팎에서는 리서치센터의 위상이 과거 대비 추락한 탓에 능력 있는 애널리스트들이 퇴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증권사들이 수익구조 다변화를 추진하는 반면, 리서치센터가 지원하는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수료율은 급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애널리스트의 처우도 상당히 후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양한 미디어가 활성화돼 활동영역이 넓어진 이유도 있다. 유튜브를 비롯해 SNS가 활성화되면서 분석가인 애널리스트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 증가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면서 책을 출간하거나,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애널리스트 평가에서 분석 정확도 비중 낮아”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보고서가 힘을 잃고 있는 까닭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긍정적 분석이 담긴 보고서만 줄기차게 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전망이 어긋나서 투자자가 손실을 봐도 애널리스트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는 없어서다.

기업의 IR 관련 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증권사가 소속 애널리스트를 평가할 때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사이의 '괴리율'을 진지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확도가 낮은 보고서를 낸 애널리스트에 대한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그마나도 목표주가 정확도가 애널리스트 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한 건 금융감독원의 권고가 나온 뒤다. 이전까지는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사이의 괴리가 커도 업무 평가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괴리율이 크게 벌어져도 그 보고서를 쓴 애널리스트 평가에 전부 반영되지 않는 실정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의 괴리율을 애널리스트를 평가할 때 활용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이며, 이는 정성적으로 반영된다”면서 “괴리율을 정량적으로 반영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가가 기업본연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거나 급락할 경우, 본연의 가치를 잘 분석한 애널리스트가 부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봐서다.

최근 증시가 많이 오르자 매도 보고서가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매수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투자협회에 집계된 지난 3월31일 기준 증권사 보고서의 매수 의견 비율은 평균 82.2%다. 이렇다보니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기업이나 투자자들로부터의 항의를 피하려 매도 보고서를 내는 걸 피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애널리스트들이 사실에 입각해 자유롭게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며 “분석 대상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보고서를 쓰지 못하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단기 변동 못 맞췄다고 비난받아야 하나?”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다. 우선 단기적인 주가 흐름이 보고서에 담긴 의견과 다른 방향일 때 가해지는 비난이 부당하다고 애널리스트들은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리서치센터는 본질적 가치를 분석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며 “증권사 보고서의 목표주가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주가가 적정 가치에 수렴한다는 가정으로 적정 가치를 산출한 것이기에 단기적으로 괴리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일 공매도 거래가 부분 재개되기 전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에서는 공매도 재개가 코스피·코스닥 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보고서가 많이 나왔다. 공매도 부분 재개 당일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0.84% 높은 3174.26까지 올랐다가 급락해 3127.20으로 마감하자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공매도 재개 이튿날부터 코스피는 상승추세를 탔고, 지난 10일에는 종가 기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증권사들의 보고서는 틀리지 않았지만 단기적인 성과만 놓고보면 비난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인 셈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개인투자자들 역시 기관투자자와 같이 장기투자의 관점에서 증권사 보고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증권 관련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개인투자자들도 단순히 보고서의 결론을 받아들이기보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논리적인 부분을 참고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