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오랜 과제인 ‘상고제(대법원 재판 제도) 개선’에 속도가 붙고 있다. 대법원이 매년 접수하는 상고심 사건이 4만~5만 건에 달하다 보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은 1인당 약 4000건의 주심 사건을 맡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 “대법관의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 충실한 심리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1일 대법원은 ‘대법원 재판 제도, 이대로 좋은가-상고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대법원 사법행정 자문회의와 상고제도 개선 특별위원회가 그간 연구 및 검토한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로 2014년 공청회 이후 7년 만에 열린 공개 토론회였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1년 동안 대법원이 접수한 상고 사건 수는 4만4328건이다. 1990년(8319건)에 비해 5배 증가했다.

하지만 대법원 상고제는 1994년 ‘심리불속행’ 제도 도입 이후 27년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심리불속행 제도란 헌법 및 대법원 판례 위반 등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사건인 경우 별도의 심리를 거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를 뜻한다. 심리불속행 결정을 하더라도 대법관들은 사건기록과 보고서 등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을 줄이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날 대법원은 상고제도 개선안으로 상고심사제 도입, 고등법원 상고부 신설, 대법관 증원 등을 꼽았다. 상고심사제는 사전 심사를 통해 대법원이 심리할 사건을 추리는 제도를 뜻한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고사건 수를 제한해 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는 대법원의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하는 방법도 논의됐다. 고법 상고부의 판결에 헌법 위반, 법령 해석 부당 등의 사유가 있으면 대법원으로 특별상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수를 현행 12명에서 18명으로 늘리고 대법관 외 ‘대법원 판사’라는 직급을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다만 대법원 재판부 구성이 복잡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 판사라는 직급이 법관들에게 승진의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반론도 있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