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99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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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지금까지 414번 사망했습니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99비트코인이 운영하는 '비트코인 부고기사 모음(Bitcoin Obituaries)'에 들어가면 나오는 문구다. 이곳은 비트코인을 인정하지 않는 언론 보도, 유명인사 발언 등을 모아 '영구 박제'하는 공간이다. 당시 가격이 얼마였는지도 꼼꼼히 기록해뒀다. 언뜻 보면 비트코인을 조롱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암호화폐 비판론자들을 희화화하는 게 목적이다.

23일 기준 414건의 비트코인 부고기사가 보관돼 있다. 비트코인은 2009년 탄생했으니 연평균 34.5건 꼴이다. 올해 들어서는 21건이 추가됐다.
올 들어 비트코인 시세와 21건의 '부고기사'가 등록된 시점을 표시한 그래프. 자료=99비트코인
올 들어 비트코인 시세와 21건의 '부고기사'가 등록된 시점을 표시한 그래프. 자료=99비트코인

"화폐도 자산도 아니다, 그냥 無가치"

비트코인이 가장 최근에 받은 사망선고는 지난 18일 영국 인디펜던트에 실린 '암호화폐의 가혹한 진실'이라는 기사다. 이 글은 "비트코인이 화폐라거나, 가치 저장 수단이라거나,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라는 생각을 갖지 말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이 암호화폐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4만2909달러(약 4800만원)였다.

최초의 부고기사는 2010년 12월 15일, 언더그라운드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이다. 필자는 "비트코인이 지금까지 유지된 유일한 이유는 신기했기 때문"이라며 "영원히 신기한 존재로 남을 수 있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당시 비트코인 값은 0.23달러(약 250원)였다.(안타깝게도 원문이 게재된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비트코인보다 먼저 사라져버렸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에게는 이런 비판이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느껴질 것이다. 논리도 구조도 늘 비슷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실패하게 될 것"(2011년)
"연결된, 피곤한, 끝나버린(wired, tired, expired) 비트코인"(2012년)
"바보들의 금"(2013년)
"비트코인 거품은 결국 터질 것"(2014년)
"비트코인은 디스인플레이션의 희생자"(2015년)
"R.I.P.(명복을 빕니다) 비트코인"(2016년)
"멍청이들, 너희는 비트코인으로 전 재산을 잃게 될 거야"(2017년)
"비트코인 가치는 2019년 0이 될 것"(2018년)
"비트코인은 2030년 사라질 것"(2019년)
"비트코인은 재앙이다"(2020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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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해지는 비트코인 비판

이 사이트 운영자가 당분간 바빠질 것 같다. 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비트코인은 죽었다"를 외치던 이들이 다시 늘고 있다. 비트코인닷컴은 "암호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비트코인 혐오자들이 떼를 지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21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비트코인이 출시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정상적인 화폐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암호화폐가 생명력을 유지하든 말든 상관 없다"며 "투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틈만 나면 비트코인 폭락을 예언하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기세등등해졌다. 그는 19일 트위터에 "한 달도 안 돼 고점 대비 40% 이상 떨어졌다"며 "이렇게 위험하고 변동성 큰 가짜 자산에 도박을 하는 무모한 기관투자가가 있다면 즉시 해고해야 한다"고 적었다.

피터 쉬프 유로퍼시픽캐피탈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은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 아닌 투기적 자산이고, 그래서 망한 것"이라며 "이번 하락장으로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비트코인은 죽었다" 사망선고, 12년 동안 414번 [임현우의 비트코인 나우]

"저가매수 기회… 난 비트코인 더 샀다"

비트코인 비관론자들도 고집스럽지만 옹호론자들도 '철벽'이긴 마찬가지다. 개인투자자들이 평정심을 다스리기 힘들 정도의 폭락장이 펼쳐졌음에도 "건강한 조정"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 트론을 만든 저스틴 선 레인베리 CEO는 20일 트위터에서 "나는 이번 폭락장에서 1억5281만달러에 비트코인 4145개를 샀고, 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 CEO는 2019년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를 낙찰받은 '코인 부자'다. 그는 버핏에게 비트코인을 선물했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고 한다.

'돈나무 언니'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50만달러까지 갈 것으로 여전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델라노 사포루 뉴스트리트어드바이저그룹 CEO는 CNBC 인터뷰에서 "장기 투자자에게 이렇게 좋은 저가 매수 기회는 당분간 안 온다"고 했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더 흐른 뒤, 숫자가 말해줄 것이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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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9개 살아있고 1647개 사라졌다

99비트코인에는 눈길을 끄는 코너가 하나 더 있다. 시장에서 사라진 암호화폐 명단을 모아둔 '숨진 코인 모음(Dead Coins)'이다. 개발 중단, 거래량 감소, 거래소 상장 실패 등의 사인(死因)도 적혀 있다. 23일 기준 1647개 코인이 이름을 올렸다. 물론 이런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코인이 더 많다. 아무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 세계 암호화폐는 1만9개로 파악됐다. 두 달 전만 해도 8800개쯤 됐는데 계속 불어나 이날 처음으로 1만개를 돌파했다고 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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