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북미·남북합의 존중…대북대표 임명 대화의지 표명
대북제재·북한인권 언급은 부담…북, 당분간 미 의중 분석할 듯
한미, 외교 강조하며 북한에 대화 '손짓'…호응이 관건(종합)
한국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신한 대북 메시지는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방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대화와 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거듭 강조했으며, 기존 북미 및 남북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등 여러 부분에서 북한의 입장을 고려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화 조건으로 제시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언급이 없는 데다 북한도 당분간 내부 문제에 집중하며 미국의 의중을 분석할 것으로 보여 대화가 조기에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대화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도 표했다"며 "앞으로 양국은 소통하며 대화·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다.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진전하면서 긴장을 줄이기 위한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으로 관여할 의지를 공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의 전략과 접근을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진행하겠다는 점을 문 대통령에게 약속한다"라고 말했다.

양국이 외교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원칙을 정상 차원에서 천명하며 북한에 대화 재개를 촉구한 것인데 실제 이번 정상회담에는 북한과 대화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한미, 외교 강조하며 북한에 대화 '손짓'…호응이 관건(종합)
양국이 정상회담 결과물인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2018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선언 같은 기존 남북 및 북미 간 약속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 달성에 필수라는 우리의 공통된 신념을 재확인한다"고 밝힌 것도 그런 노력으로 풀이된다.

남북 간 평화와 관계 발전 의지를 강조한 판문점 선언은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 교류 협력을 명시하고, 남북이 종전을 선언하자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 선언을 존중한다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 속도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앞지르는 것을 경계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남북관계 독자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바라는 대로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 JTBC 인터뷰에서 공동성명에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문구가 포함된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 우리가 북한과 협력 해나가는 데 있어서 정책적 공간, 여유가 그만큼 생겼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비롯해 기존 북미 간 합의를 토대로 협상하겠다는 점도 북미 협상을 원점으로 돌리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가 멈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싱가포르 합의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한반도 비핵화보다 앞에 배치하는 등 북한이 유리하게 평가할 요소가 있고, 북한도 이 합의를 김정은 위원장의 주요 외교 치적으로 홍보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를 총괄하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성 김 동아태차관보 대행을 임명한 것도 북한이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대북특별대표 임명이 미국의 확실한 대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속한 임명을 건의해왔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

특히 성 김 대행은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 주한미국대사, 대북정책특별대표 등을 지낸 '북핵통'으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북측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조율하는 등 그간 협상 과정을 잘 알고 있고, 북한도 익숙한 인사다.

한미, 외교 강조하며 북한에 대화 '손짓'…호응이 관건(종합)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도 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며 "이번 회담은 북한이 그동안 제시한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 미국이 선대선에 방점을 둔 메시지를 낸 것으로, 북한도 선대선으로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화 제의에 바로 호응할지는 아직은 불투명하다.

현재 북한은 자력갱생 기조하에 외교보다 내치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 등 미국의 의중을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미국은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설명하겠다며 북한에 접촉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잘 접수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대북정책에 대한 공개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미국이 제재 완화 등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점도 북한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한미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했으며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하겠다고도 했다.

인권은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다.

북미 간 대화가 성사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은 정상 간 만남은 실무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조건에 대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대화"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했으며, 과거처럼 북한이 원하는 "국제적 인정"이나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전혀 진지하지 않으면서 진지해 보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지난 20일 미국 PBS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기 전에 더 많은 준비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