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오진우 교수(왼쪽)와 한동욱 교수. 부산대 제공.
부산대 오진우 교수(왼쪽)와 한동욱 교수. 부산대 제공.
부산대학교 연구진이 농산물 도매시장 등 현장에서 접촉 없이 냄새만으로 과일의 신선도를 즉시 판별 가능한 휴대용 나노-바이오 전자코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전자코는 동물의 후각 기관을 모방해 VOC(휘발성유기화합물) 냄새를 구별하는 데 특화된 감지 소자다.

부산대학교(총장 차정인)는 오진우 나노과학기술대학 나노에너지공학과 연구팀과 한동욱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공동연구를 통해 현장에서 비접촉 방식으로 과일 신선도를 판별할 수 있는 나노-바이오 전자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농림수산부와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 지원하는 과제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기초연구실지원사업을 통해 수행한 이번 연구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 검출을 위한 M13 박테리오파지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표면 화학 기반 생체 전자코 연구’라는 논문명으로 나노-바이오 기술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바이오센서 바이오일렉트로닉스(Biosensors and Bioelectronics)』 5월 16일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9월호 출판을 앞두고 있다. 네덜란드 엘스비어(Elsevier)사에서 발행하는 이 저널은 올해 분석화학 분야에서 상위 1%에 든 학술지로, 영향력지수(Impact Factor)는 10.257이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은 교신저자인 부산대 오진우 교수와 한동욱 교수를 포함해 부산대 나노과학기술대학 박사급 및 학생 연구원들로만 이뤄져 있다.

최근 환경오염으로 인한 유해물질의 위협과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호흡기 질환에 대한 우려와 같은 부정적인 동기뿐 아니라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긍정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냄새에 기반해 물질을 검출하는 ‘전자코’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자코’는 뛰어난 냄새 감지 능력이 있는 탐지견(K9)의 후각 능력을 성취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나, 개의 후각 수용체는 220만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를 공학적으로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여러 유·무기 수용체를 감지부로 사용하는 전자코들이 개발돼 왔다. 하지만 반응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쉽지 않으며 수용체별로 특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상관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부산대 연구팀은 유전공학 방법으로 바이오 물질의 DNA를 조작하면 동일한 플랫폼을 유지하면서도 원하는 화학 특성을 탑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변인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코 감지부의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효과적인 전자코 개발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기존 유·무기 소재 기반의 수용체 대신 친환경 바이오 물질(M13 박테리오파지)을 사용해 과일의 신선도를 판별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친환경 바이오 소재의 엄밀한 물성 분석 기술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바이오일렉트로닉스(생체전자공학) 시대의 시작점을 알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외가닥 DNA 바이러스 중 하나인 M13박테리오파지는 폭 6.6nm(나노미터, 10억분의 1), 길이 880nm인 바이오 물질이며 2700여 개의 표면 단백질이 중심의 외가닥 DNA를 나선형으로 감고 있다.

각각의 표면 단백질은 양 끝단에 DNA 조작을 통해 원하는 아미노산을 배치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각각의 유전자 타입(type) M13 파지는 특유의 반응성을 보유한 수용체로 작동할 수 있다.

각기 다른 반응성을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유전 타입이 다른 M13 파지들 사이의 크기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동일한 자기조립 조건이 적용될 수 있다(변인통제 가능).

M13 박테리오파지의 반응성은 파지가 외부 물질(VOCs,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노출되면 흡착친화도에 비례해 물질의 흡착정도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센서의 색 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구할 수 있다.

M13 파지의 물성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고효율의 나노-바이오 전자코를 제작하기 위해 연구팀은 DFT(밀도 범함수 이론) 시뮬레이션을 통해 적절한 아미노산을 선정해 실험적으로 측정된 반응성이 시뮬레이션으로 예측된 반응성과 유사함을 증명했다.

먼저 DFT 시뮬레이션으로 화학적 특성이 크게 다른 4종 아미노산을 선정했다. 이를 탑재한 4종(W-type, E-type, P-type, H-type)의 유전자조작된 M13 박테리오파지를 개발했다. 자기조립 기술(dip-coating)을 이용해 M13 박테리오파지 색 필름을 제작해 과일향에 포함된 VOCs에 대한 반응성을 실험적으로 측정했다. 여기에서 측정된 M13 파지 필름의 반응성과 DFT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한 반응성이 비례 관계에 있음을 확인했다.

계층분석을 통해 나노-바이오 전자코가 VOCs를 구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반응성 차이가 크게 나는 H-type과 W-type을 사용했을 때 분류 성공률이 가장 높았다.

최종적으로 연구팀은 VOCs를 가장 잘 구별하는 H-type과 W-type을 사용해 실제 과일 중 복숭아를 측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일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연구에서 사용한 나노-바이오 전자코는 신선도의 차이를 냄새로 구별해냈다.

이번 연구는 차세대 나노-바이오 전자코의 주요 소재로 주목 받고 있는 M13 박테리오파지의 반응성과 분류 특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최초로 분리해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험실 환경에서 측정한 VOCs 반응성을 기반으로 개발한 나노-바이오 전자코가 실제 샘플(여기서는 복숭아)의 향 차이를 구별하는 데 우수한 특성을 나타냄을 확인함으로써 나노-바이오 전자코 개발의 방법론을 확립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한 유전자 조작된 M13 파지 기반 나노-바이오 전자코 및 그 개발 방법론은 과일의 신선도뿐 아니라 유해물질 검출, 호흡 냄새에 기반한 질병 진단, 포도주나 커피의 품질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시스템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널리 적용·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에 사용된 수용체의 반응성과 전자코 특성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M13 파지 재료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재료들이 전자코의 수용체로 개발되는 방법론이 개발됐다. 이를 통해 감지 소자 관련 과학기술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M13박테리오파지는 유전물질(DNA)을 가지고 있는 생체재료로서 대량 배양하더라도 항상 동일하게 얻을 수 있다. 연구목적에 맞게 유전자조작을 통해 추가적인 기능을 부가할 수 있다. 이에 더 다양한 반응성을 나타내는 M13박테리오파지 제작 및 확보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전자코 시스템 제작이 가능할 전망이다.

오진우 나노에너지공학과 교수와 한동욱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는 “이번 융합 연구를 통해 바이오일렉트로닉스의 시대를 열 차세대 소재인 M13 박테리오파지를 차세대 나노-바이오 전자코의 핵심 소재로 활용하고 분석하는 새로운 체계적 방법론을 제시했고 실험실 수준의 검증을 넘어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현함으로써 나노-바이오 소재의 실용적 응용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