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은행 실리콘밸리뱅크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스팩과 합병해 미 증시에 상장한 기업 중 절반인 50%가 실적 목표치를 충족하지 못했고 42%는 상장 첫해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플로리다대학교의 제이 리터 연구원 등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지난 4월까지 스팩과 합병을 마친 기술기업 44곳의 주가는 지난 17일 종가 기준 평균적으로 12.6% 떨어졌다. 분석 대상인 44곳 중 절반 이상의 주가는 20% 하락했다. 같은 기간 기업공개(IPO)를 통해 증시에 상장한 기술기업 77곳의 주가도 상장 첫날 종가보다 평균 10.7% 떨어졌다.
스팩과 합병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의 성과가 좋지 않자 여러 비상장기업들은 스팩의 합병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스팩 관련 정보 제공업체인 스팩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합병 대상 기업을 찾고 있는 스팩 숫자는 400개 이상이다. 미 공유사무실 스타트업 인더스트리어스의 경우 최근 1년 동안 스팩 30곳으로부터 제안을 받을 만큼 스팩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스팩은 ‘복붙’(복사해서 그대로 붙임)한 수준의 제안서를 스타트업에 보내는 바람에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WSJ는 보도했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들은 스팩과의 합병 대신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다음 비상장사로 남는 안을 더 선호하게 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스팩은 상장 후 비상장사와 합병해 증시 우회상장의 통로 역할을 하는 페이퍼컴퍼니다. 스팩은 IPO에 비해 상장까지 속도가 빠르고 규제는 덜하면서도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지난해 미 비상장 스타트업들 사이 인기를 끌었다.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자들도 스팩 조성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금융감독당국의 스팩 규제 강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월가를 휩쓸었던 스팩의 인기가 주춤해졌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