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하루 종일, 심준보
하루 종일

심준보

느낌표 구부려 물음표

물음표 곧게 펴 느낌표

그러다 닳고 닳아

어느새 마침표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태헌의 한역]
盡終日(진종일)

勾曲嘆號制問號(구곡탄호제문호)
伸直問號作嘆號(신직문호작탄호)
如此磨損成句號(여차마손성구호)
吾君今日亦苦勞(오군금일역고로)

[주석]
* 盡終日(진종일) : 하루 종일.
勾曲(구곡) : 구부리다. / 嘆號(탄호) : 감탄부호, 느낌표, ‘!’. / 制(제) : ~을 만들다. / 問號(문호) : 의문부호, 물음표, ‘?’.
伸直(신직) : 곧게 펴다. / 作(작) : ~을 만들다.
如此(여차) : 이처럼, 그러다, 어느새. / 磨損(마손) : 닳다, 닳아 없어지다. / 成(성) : ~이 되다. / 句號(구호) : 종결부호, 마침표, ‘.’.
吾君(오군) : 그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서 생략된 주어를 역자가 임의로 보충한 것이다. / 今日(금일) : 오늘. / 亦(역) : 역시, 또한. / 苦勞(고로) : 수고하다, 고생하다.

[한역의 직역]
하루 종일

느낌표 구부려 물음표 만들었다가
물음표 곧게 펴 느낌표 만드나니
그러다 닳고 닳아 마침표 되었구나
그대여!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한역 노트]
“오늘 일 잘 해야지!”라며 씩씩하게 출근했더니, 상사가 일을 시키는 게 영 마뜩하지가 않다. 이럴 때면 거의 어김없이 “이걸 왜 나보고 하라는 거야?”와 같은 혼잣말을 하기 마련이다. 느낌표가 어느새 물음표로 바뀐 것이다. 어쨌거나 시킨 일이라 꾸역꾸역 했더니, “아! 이래서 하라고 했구나!”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올 수 있다. 이는 물음표가 다시 느낌표로 바뀐 것이다. 현대인들은 일의 종류에 관계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느낌표와 물음표, 혹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고 가기 일쑤일 것이다. 그리고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이것이 될까?”, “되는구나!” 또는 “안 되는구나!”와 같은 부호 사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이렇게 하루의 일과를 극단적으로 단축시켜 느낌표와 물음표라는 두 개의 문장부호로 개괄한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일과의 과정을, 느낌표를 구부리고 물음표를 곧게 펴는 것으로 형상화 했다는 점이다. 시인의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상상력이 어우러져 이런 멋진 아이디어가 빚어졌을 것인데, 시인은 다시 여기에 더해 구부리고 곧게 펴는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 하다 보니 마침내 닳아 없어지고 맨 밑에 있는 점 하나, 곧 마침표만 남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시인은 남은 마침표로 하루 일과의 종료를 자연스럽게 비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에서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마침표 뒤에는 당연히 쉼표(,)가 자리하게 될 듯하다. 사실 문장 안에서의 쉼표는 잠깐의 휴지(休止)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쉼표의 ‘쉼’이라는 그 말로 인하여 마침표 뒤에 올 만한 기호로 여겨봄직하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휴식은 언제나 짧게만 느껴지니, 잠깐의 휴지를 나타내는 쉼표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시인은 문장부호로 하루를 나타냈지만, 이를 확대해서 보면 우리의 일생이 될 수도 있다. 물음표와 느낌표의 끊임없는 연속인 인생은 마침내 마침표 하나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자면 “오늘도”를 “이승도”나 “이번 생도” 정도로 바꾸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경우라 하더라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주체는 전지적인 존재거나 시인 자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역자는 사실 시인의 이 시를 만나기 전에 문장부호를 이용해서 시를 지어본 이력이 있다. 이 칼럼 코너에서 이미 소개했던 터이지만 독자께서 뒤적거려야 하는 불편을 덜어드리고자 여기에 다시 적어보도록 하겠다.

把杯(파배)
世上疑問號(세상의문호)
人生嗟歎詞(인생차탄사)
事或非如意(사혹비여의)
把杯笑最宜(파배소최의)

술잔 잡고서
세상은 의문부호
인생은 감탄사!
일이 혹 뜻 같지 않으면
술잔 잡고 웃는 게 최고

역자의 경우는 시인과 보는 각도가 다른 만큼 결론도 다른 얘기로 흘러가 버렸다. 물론 술을 마시는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시로 엮은 탓이 크기는 할 것이다. 어쨌거나 새삼 느끼는 거지만 허허로운 세상을 술로 덮어 잊으려고 쓴 술을 내리부어도 세상은 잊혀지지 않는다. 시를 쓰기 때문에 잊어야 할 것이 많은지, 잊어야 할 것이 많아 시를 쓰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시인들 가운데는 술 못하는 시인이 거의 없고, 또 술에 관한 시를 쓰지 않은 시인도 거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걸까? 시주(詩酒:시와 술)라는 말처럼 찰떡궁합인 말이 역자에게는 쉽사리 떠오르지가 않는다.

역자는 5연 6행으로 된 원시를 4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는데, 1구와 3구까지 같은 글자로 시구를 마무리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제4구에만 압운한 형식이 되었다. 이런 파격적인 압운(押韻)은 아마도 역자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한역시에서는 원시에 생략된 동사와 ‘주어’를 보충하였다.

2021. 5. 25.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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