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2013년 테이퍼링에서 배우는 교훈
월가에서는 작년 말부터 뉴욕 증시가 10% 이상 조정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모건스탠리,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깊은 조정은 없었습니다. 5% 수준의 조정이 나타나면 강력한 저가매수세가 지속적으로 유입됐기 때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미 중앙은행(Fed)이 풀어놓은 돈이 워낙 많고, 특별히 주식 외에 살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요즘 거래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걸 감안하면 사는 수요가 많다기 보단 특별히 파는 사람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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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됐습니다. 다우는 0.54%, S&P 500 지수는 0.99% 상승했고 나스닥은 1.41% 뛰었습니다.

이날 금리(미 국채 10년물 기준)가 연 1.6% 초반까지 하락해 안정적 흐름을 보이자 기술주가 일제히 반등하면서 나스닥 지수 급등을 이끌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알파벳 등은 2% 이상 올랐고 MGM스튜디오를 90억 달러 수준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아마존은 소식에 1.31% 상승했습니다.

TSMC의 지난 4월 실적이 꺾인 걸 보고 팬데믹 수요가 꺾인 게 아니냐는 의심 등으로 급락했던 반도체 주식들도 급등했습니다. 램리서치가 3.3% 올랐고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3% 이상 치솟았습니다. 테슬라는 4.4% 상승해 다시 600달러대(606.44달러)로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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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을 보면 지난 3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 강화로 다우 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았는데 지난 4월엔 금리가 안정되며 다우 수익률을 일부 따라잡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달 들어 다시 하락했죠. 지난주까지 다우는 1% 상승했지만 나스닥은 3.5% 하락했습니다.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지난 4월처럼 기술주들이 뒤처졌던 수익률을 일부 따라잡는 과정"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 스트러티지 CEO 등과 비트코인 채굴에서 전기 소모를 줄이기 위한 모임을 갖고 '북미 채굴 협의회'를 결성했다고 밝힌 뒤 비트코인이 4만 달러 근처까지 반등한 것도 투자심리에 긍정적이었습니다.

사실 지난주 시장 전반에는 온갖 걱정이 많았습니다. Fed가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다 인플레이션 우려, 경기 회복세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지난 7일 4월 고용지표가 나온 이후 경제 지표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회복세가 예상보다 약한 게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지요. 하지만 지난주 목요일 전주 실업급여 청구건수의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우려가 많이 걷혔죠.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의 먹구름이 급속히 걷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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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미국의 코로나 신규감염자 수는 1만8000명, 23일에는 1만4000명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이제 거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지난 23일 나이 쉰 하나인 필 미켈슨이 PGA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수많은 갤러리 중에 마스크를 쓴 사람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현재 미국 인구의 49%가 적어도 한 번의 백신 접종을 받았고, 39%는 두 번 모두 맞았습니다. 메사추세츠 뉴저지 코네티컷 메인 등 9개주에서는 70% 이상의 성인이 적어도 한 번 접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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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알래스카 관광 지원법'에 서명했고 크루즈 여행이 이번 여름 재개될 것이란 예상에 노르웨이지안 크루즈가 4.7% 급등하고 MGM리조트도 5.17% 치솟는 등 경제 재개 관련주들도 많이 올랐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급등했던 목재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조금 누구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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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지난 23일 주요 원자재 관련 기업들을 소집해 사재기와 가격 조작에 대해 무관용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이날 발표되면서 중국내 철광석 가격이 5~7% 급락했습니다. 중국의 신용욕구(credit impulse)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지수는 중국의 설비투자 사이클에 선행하기 때문입니다. 설비투자가 줄어든다면 세계 원자재 수요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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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엘 브레이너드 Fed 이사는 이날 "경제 일부에서 최근 급등한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팬데믹 초기 당시 저점에서 회복되고,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면서 안정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오는 28일 중요한 지표가 나옵니다. 4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인데요. Fed가 가장 중시여기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바로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PCE 물가입니다.

4월 PCE물가는 전월대비 0.6% 상승, 전년대비 3.5% 상승할 것으로 월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핵심 PCE는 2.9% 상승이 예상됩니다. 이는 3월 각각 0.5% 2.3% 1.8%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입니다. 다만 월가를 놀라게 한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4.2%(전년 대비)보다는 소폭 낮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2013년 테이퍼링에서 배우는 교훈
골드만삭스는 이에 대해 내년까지 핵심 PCE 물가와 핵심 CPI간의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인플레이션 논쟁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치가 어떻게 나오든 당분간 인플레이션 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테이퍼링 우려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한 ‘상당수’(a number of)에 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직 통화정책을 변화시킬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앞으로 몇 달 안에 도달할 수 있고 자산 매입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올 하반기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2013년 테이퍼링에서 배우는 교훈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연방은행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방은행 총재는 이미 테이퍼링 논의를 늦지 않게 시작해야한다고 밝혔고, 영원한 '매파'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연방은행 총재가 '상당수' 가운데 나머지 한 사람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지 총재는 지난 2013년 초 FOMC가 열릴 때마다 '조기 테이퍼링이 필요하다'며 Fed의 유지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던 장본인입니다.

사실 그동안 유일하게 테이퍼링을 경험했던 때가 유일하게 2013~2014년입니다. 그런 만큼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나를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Fed가 "테이퍼링을 하게 되면 미리 사전에 알려주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당시 커뮤니케이션 실패로 인해 '테이퍼 텐트럼'을 초래했던 경험에서 얻은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도 그때를 돌이켜보고 교훈을 얻어야겠지요.

하필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의회 청문회에서 불쑥 테이퍼링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게 정확히 8년 전인 지난주 토요일, 즉 5월22일이었습니다. 당시 버냉키 의장은 "경제 전망에 지속적인 개선이 보이고 그것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다음 몇 회의 회의에서 채권 매입의 속도를 한 단계 낮출 수 있다"고 밝혔었습니다.

그 직후 뉴욕 채권 시장에서 2.0% 수준이던 10년물 금리는 넉 달 만인 9월 초 3.0%까지 치솟았었죠.

주식시장은 어땠을까요. 뉴욕 증시의 S&P 500 지수는 2013년 초부터 5월22일까지 무려 16% 올라 1655에서 마감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5개월간은 횡보를 했고 10월8일에야 1655를 다시 찍었습니다. 다만 이후에는 연말까지 다시 12% 상승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32.39%나 급등했었습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바람에 당초 9월 FOMC에서 테이퍼링 시작을 결의하려던 것으로 알려졌던 Fed는 결국 그해 마지막 회의인 12월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2014년 1월부터 매월 자산매입 규모를 850억 달러에서 750억 달러로 줄이기로 한 것이죠. 그렇게 2014년 1월부터 10월까지 1년간 테이퍼링이 이뤄졌습니다. 금리 인상은 2015년 12월에야 이뤄졌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2013년 테이퍼링에서 배우는 교훈
재미있는 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테이퍼링이 실제 시행된 2014년 당시 금리는 1월 연 3.0%에서 그해 말 연 1.99%까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뉴욕 증시의 S&P 500 지수도 1월 1800대 초반에서 그해 말 2000을 넘었지요. 연간 수익률이 13.69%에 달했습니다.

경기만 좋고 물가만 낮게 유지된다면 테이퍼링을 해도 금융시장은 괜찮다는 것이죠. 2013년 미국의 GDP 성장률은 연 1.84%였지만 2014년은 2.53%, 2015년은 2.91%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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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는 지,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나올 지 확인하면서 합니다.

월가 관계자는 "S&P 500 지수가 다시 4200을 넘으면서 사상 최고치에 1% 미만으로 다가섰다"며 "중요한 5월 고용지표 발표(6월4일)까지 11일 남았고 원래 월말엔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시장 상황을 잘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장 막판에 차익실현 매물이 집중적으로 쏟아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