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출판 분야로 시선을 옮기면 얘기가 확 달라집니다. '프랑스'라는 국명의 몸값이 뚝 떨어진다고 하는데요. "소설, 비소설을 가리지 않고 한국에서 프랑스 저자들의 책은 인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의 좋은 출판물을 발굴해 국내 출판사에 소개하고, 판권 계약의 다리를 놓는 북에이전시 대표 한 분이 저에게 전한 말입니다.
그 대표 역시 영어권, 일어권, 독일어권 서적은 물론 중국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저작과 함께 물론 프랑스어 저작도 국내에 소개하고는 있지만, 프랑스어권 저자들의 책은 이상하게 국내 출판사들에 큰 인기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사르트르와 카뮈를 비롯해 프랑스 출신의 수많은 유명 작가와 사상가, 거물 학자들이 즐비한 점을 떠올리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북에이전시 대표도 왜 그런 현상이 빚어지는지 똑 떨어지는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프랑스어권 서적이 한국에서 '대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베스트 셀러에 오른 사례가 드물었던 점이 출판사들에 일종의 '학습효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 서적 기피' 현상에도 예외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프랑스어권 작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입니다. 베르베르는 작품이 35개국어로 번역돼 1500만 부 이상 팔린 작가지만 1993년 한국에서 '개미'가 히트한 것이 전 세계적인 성공의 발판이 됐다고 합니다. 작가 스스로도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힐 정도라는데요.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 주는 독자가 많다고 말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게 ‘개미’뿐 아니라 ‘뇌’ ‘타나토노트’ ‘제3인류’ ‘잠’ ‘파라다이스’ 등 그가 내놓는 작품마다 한국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출판사들도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의 작품에는 특별히 신경 쓰는 분위기입니다.
열린책들이 최근 출간한 베르나르의 신작 장편소설 '문명'에서도 출판사들이 그를 얼마나 '특별대우'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19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를 배경으로 고양이 바스테트가 모험을 펼치는 스토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고양이의 모험을 통해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눈에 띄는 것은 출판사 측이 예약 한정판에 적용한 RGB스페셜 커버입니다. 이 커버는 하나의 표지로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버전을 즐길 수 있는 디자인으로 제작됐습니다. 책에 첨부된 3가지 색상의 렌즈로 책 커버를 보면 다른 디자인이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빨간색 렌즈로는 주인공 고양이 바스테트와 이집트 고양이 여신의 환생인 고양이의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초록 렌즈로는 신전과 고양이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파랑 렌즈로는 고양이가 위기를 탈출할 때 사용하는 열기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숨어 있는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언제나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표지에 담았다는 설명입니다.
이 출판사는 앞서 같은 작가의 작품 '죽음'에서는 어둠 속에서 이미지가 드러나는 야광 커버를 제작했고, '기억'에서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렌티큘라 커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의미를 부각하는 특별한 디자인을 베르베르 작품에 지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서적에 대한 오랜 저평가를 극복하고 흥행공식을 만들어낸 작가에 특별대우를 하는 셈인데요.
과연 특별한 책 표지가 특별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