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32년 무역 정해권 韓商 "아프리카는 틈새시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발전설비 자재 공급, "높은 제품력·추진력이 한국의 강점"
"아프리카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진입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죠. 틈새시장 공략이 필요합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2년째 무역업에 종사하는 정해권(68) 우리코퍼레이션 대표는 오랫동안 사업을 이어온 비결로 "큰 주문은 없어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게 대박이라고 믿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와 연합뉴스 주최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대표자대회·수출상담회'에 참석 중인 그는 25일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서 대박 가능성이 높은 비즈니스는 이미 시장이 형성됐거나 대기업이 진출한 경우가 많으므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발전소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으로 매년 100∼150만 달러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 국가인 마다가스카르 광산 인근에 세워진 화력발전소에 부품을 대고 있다.
그는 "광산개발과 맞물린 발전소라서 건설 단계에서부터 자재 공급을 해 고정 거래처로 인정받았다"며 "발전설비는 한 번 들어서면 영구적으로 운영되므로 안정적 거래가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 입사한 그는 가나에 디젤기관차 차량 12대 납부를 위해 1985년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가나는 도시에서조차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많을 정도로 낙후했지만 생동감이 넘쳤다.
성장 가능성을 본 그는 앞으로 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 주저하지 않고 사표를 냈다.
우선 아프리카를 배우려고 가나의 현지 무역회사에 들어가 4년을 다닌 뒤 1989년 독립해 남아공에 회사를 차렸다.
그는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출소와 민주화 바람, 흑인 우월주의 등장, 경제 디폴트 등을 겪었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 사업이 위기에 몰린 적도 있고 총을 든 무장 강도를 두 번이나 만나고도 목숨을 건졌다.
정 대표는 "현지인도 함께 겪는 어려움이므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싶어 늘 정면 돌파를 해오다 보니 내공이 생기고 맷집도 늘었다"고 회상했다.
남아공에서 주요 비즈니스는 백인, 유대계, 인도계가 다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 그런데도 그는 사업 기회가 있다며 "품질 좋은 한국제품 신뢰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보이는 한국인의 기질 덕분에 호감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1993년 설립된 월드옥타 요하네스버그지회 창립멤버로 몸을 담아온 그는 지난해부터 지회장을 맡아 차세대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회 기간 국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설명회 등에도 참가할 예정인 그는 "환경이 열악한 곳일수록 기회가 더 많은 법"이라며 "한국의 무한 경쟁에 비하면 아프리카는 상대적으로 취·창업이 쉬운 곳"이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2년째 무역업에 종사하는 정해권(68) 우리코퍼레이션 대표는 오랫동안 사업을 이어온 비결로 "큰 주문은 없어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게 대박이라고 믿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와 연합뉴스 주최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대표자대회·수출상담회'에 참석 중인 그는 25일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서 대박 가능성이 높은 비즈니스는 이미 시장이 형성됐거나 대기업이 진출한 경우가 많으므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발전소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으로 매년 100∼150만 달러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 국가인 마다가스카르 광산 인근에 세워진 화력발전소에 부품을 대고 있다.
그는 "광산개발과 맞물린 발전소라서 건설 단계에서부터 자재 공급을 해 고정 거래처로 인정받았다"며 "발전설비는 한 번 들어서면 영구적으로 운영되므로 안정적 거래가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 입사한 그는 가나에 디젤기관차 차량 12대 납부를 위해 1985년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가나는 도시에서조차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많을 정도로 낙후했지만 생동감이 넘쳤다.
성장 가능성을 본 그는 앞으로 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 주저하지 않고 사표를 냈다.
우선 아프리카를 배우려고 가나의 현지 무역회사에 들어가 4년을 다닌 뒤 1989년 독립해 남아공에 회사를 차렸다.
그는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출소와 민주화 바람, 흑인 우월주의 등장, 경제 디폴트 등을 겪었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 사업이 위기에 몰린 적도 있고 총을 든 무장 강도를 두 번이나 만나고도 목숨을 건졌다.
정 대표는 "현지인도 함께 겪는 어려움이므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싶어 늘 정면 돌파를 해오다 보니 내공이 생기고 맷집도 늘었다"고 회상했다.
남아공에서 주요 비즈니스는 백인, 유대계, 인도계가 다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 그런데도 그는 사업 기회가 있다며 "품질 좋은 한국제품 신뢰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보이는 한국인의 기질 덕분에 호감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1993년 설립된 월드옥타 요하네스버그지회 창립멤버로 몸을 담아온 그는 지난해부터 지회장을 맡아 차세대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회 기간 국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설명회 등에도 참가할 예정인 그는 "환경이 열악한 곳일수록 기회가 더 많은 법"이라며 "한국의 무한 경쟁에 비하면 아프리카는 상대적으로 취·창업이 쉬운 곳"이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