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엉겅퀴, 줄맨드라미 등 꽃과 화초들이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조명을 받고 있다. 노란 꽃들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 우리에게 친숙한 꽃을 담은 사진인데, 까만 배경과 강렬한 조명 아래 드러난 꽃들이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은 사진가 김예랑이 꽃을 담은 연작 ‘화지몽(花之夢)’의 하나다. 작가가 담아낸 꽃들은 일상의 공간을 장식하는 어여쁜 꽃다발이 아니다. 꿈결에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이 되길 원한다. 때론 꽃을 소유하길 갈망한다. 하지만 꽃은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꽃으로 사는 삶’이나 ‘꽃을 가진 인생’은 운명적으로 ‘소멸’을 향해 빠르게 내닫는다. 김씨가 보여주는 꽃들은 모두 행복하고 곱기만 하지 않다. 화려하지만 우울하고 서글픈 모습이 뒤섞여 있다. 욕망과 절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꽃의 모습을 통해 모든 생명체의 숙명을 환기시킨다. 김씨의 작품들은 6월 8일까지 서울 삼청동 프린트베이커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